미국 여론 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 2009년 조사에 의하면 75세 이상 가운데 35%만이 자신이 늙었다고 답했다.
10년이 지났다. 건강과 안전을 다루는 상품이 더욱 향상된 제품으로 파도처럼 밀려들면서 더 장수하고 더 자립적인 노후를 약속할 것 같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노후를 막상 받아들면 어디에서도 사용설명서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덤으로 얻은 시간을 보내며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 자신의 몫이다.
그러나 현재는 건강한 고려 층이 추구해도 좋다고 사회적으로 허용된 일거리가 아직은 적다. 레저나 건전한 소비활동, 자원봉사활동이나 가족과의 오붓한 시간이 고작이다.
사람마다 제 각각 다른 시기에 다른 형태로 노인이 되지만 정부와 산업과 문화가 정의하는 고령자는 한 덩어리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거의 똑같은 나이에 고령자로 규정된다는 현실을 우리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할까? 주머니에 돈이 있는 65세 이상 건강한 사람에게 굳이 휴양이 필요할까.
대신 할 일이 필요하다. 단순한 여가 활용이 아닌 타고난 본능으로도, 정연한 논리로도 이해할 수 있는 삶의 방식에, 특권을 향유한다는 자부심에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나이든 사람이 많아지는 장수경제의 시대가 온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노인을 가난하고 비루하고 의존적이 문젯거리로 취급한다. 편견을 바로잡아야한다. 곧 베이비붐 세대가 주축이 되어 통로를 더 열라고 요구할 것이다. 싸움을 불사하면서까지 일자리를 찾고 사랑과 사회적 성취를 쫓고 문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그런데 베이비붐 세대가 점점 늙어가는 현실에 전혀 대비하고 있지 않다는 상황이 점점 뚜렷하게 보인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너무나도 분명하다.
‘리타이어먼트 플래닝’ 뉴스 편집자는 1956년에 신문을 발행하면서 첫 주제를 뽑으며 ‘은퇴’라는 말이 불만스럽다고 밝혔다.
마치 ‘인생에서 후퇴한다’는 ‘활기찬 세상에서 철수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왜 ‘완성기(完成期)’라고 하면 안 되는가? 정말 왜 그러면 안 될까?
‘완성기’를 사는 모습은 우유가 응결하는 모양을 지켜볼 때만큼이나 매혹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라고 썼다. ‘황금빛 노후’, 이 꿈을 손에 쥘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찬란한 노을빛이 따뜻하고 눈부시고, 찬란하게 마치 폭발하듯 부챗살처럼 쫙 퍼지는 광경이 담겨있는 완성기를 필자는 그려본다.
노인을 인간이 아니라 고장 나서 고쳐야하는 존재로 바라보게 해서는 안 된다.
노년에도 경험할 일은 무궁무진하며 하나하나 체험해나갈 시간도 넘쳐난다. 노년에는 무엇 때문에 행복하고 무엇 때문에 불행한지 내일이면 더 늙는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으면 우리의 의식을 옭아매는 틀을 깨뜨려야 한다. 그리고 늘 그렇듯 깨뜨려 낼 것이다.
시간과 자유가 덤으로 주어진다면 우리는 과연 정확히 무엇을 선택해서 살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