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속성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물질과 비물질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무한 형체의 실존체로써 구성돼있다. 따라서 실제로 우리가 보고 관측할 수 있는 실존 체의 물질이란 약 4%에 불과하며 기타의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 96%로서 이뤄져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실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광범위 하지만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우린 일부분만을 보고 있는 사실상 맹인에 지나지 않으나 오만과 자만심의 눈앞에서 보이는 것만 보고 이야기하는 아전인수적인 우(愚)를 범하고 있음을 어찌하랴.
물론 인간은 오욕(식:食, 색:色, 재:財,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지니나 이것을 구함에 지나침이 드러나 집착할 땐 ‘계’로서 그 탐욕과 노여움 등 어리석음을 다스려야만 하리라~, 그래서 어느 시인은 “강인한 ‘진실’만이 향기로운 사과 알로 붉게 빛나니~, 자, 이제 진실의 시간이다”고 읊은 자연의 외침과 그 경건함 들에서처럼…,
우린 진실만을 지향하면서 정심(正心)으로 온갖 욕심을 털어내면서 명리를 잊고 세상의 자비와 평화로운 저 광경들 아주 작은 것에서도 더 큰 시야가 트임으로 탐욕을 벗어내면 희망의 순간들이 환상처럼 찬란한 무지개 돼 모락모락 무욕(無慾)의 꽃 핌도 인식할 수 있게 되리라.
아니라 했지만 ‘탐욕’은 우리에겐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부정적 어감이 내포된 이 말이 도덕적 논리에 상관없이 비판의 대상이 됨에서 <사랑이든 세상살이든>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을 돌아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심리적 또는 물리적 공간에서 오욕의 경계를 허물어 내야만 삶이 더 풍요하게 될 터이리라.
허나 우리사회의 사회상은 마치 물질 만능 주의 ‘권력과 부’를 향한 몸부림으로 명리만을 추구하는 형태가 되고 있음에서 이젠 우리도 <교육과 정치>의 배리 현상들 들여다보아야 할 때이리다. 오직 명리를 누릴 것이냐 아니면 저 세상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킨 한 사람으로서 남느냐 하는 탐욕 아이콘인 사회 소설의 서사 성들을 ‘적과 흑’에서 좀 살펴보도록 하자!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 <줄리앙>은 라틴어 성경을 외울 수 있는 높은 지적능력과 영민함 그리고 빼어난 용모로서 하층 계급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그의 특권세계를 향한 목적과 도구인 ‘레날’ 부인과 ‘마틸드’ 양을 희생양으로 유혹해 그가 그리던 권력에 성공한 듯 했지만 큰 야망 너머 탐욕으로 인한 멸망의 나락에 빠짐을 봤다.
마치 그건 오늘의 우리 현실처럼 <줄리앙> 그는 동시대 프랑스의 사회 분위기에 편승된 주인공으로서 상류층 진입을 위해 상류층 젠더를 희생양으로 삼은 그 사실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니 <거짓과 위선>의 과부하로 불공정하게 성공한 사람이 각광을 받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의 <창>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한 의혹의 현실 상황들은 너무 심각하다.
‘돈’과‘ 권력’만을 향한 몸부림들 자신의 名利만을 쫓는 물질 만능주의와 반칙을 수단으로 한 목적의 정당성이 우리 사회의 특권층으로 오버랩 되고 있는 것만 같아 참으로 씁쓸하기까지 하다.
누구는 부모를 잘 만나 시대를 잘 타고 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이 자조석인 세월을 외치는 부류들의 눈에 비친 사회가 공평한 사회일까 하는 의구심만 일렁이기 때문에서의 세상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이 말들이 오래 오래 유효할 것인가.
<이 하 수상한 세상>들이 난무하는 풍자와 조롱 등 네티즌들의 사회 비판을 보면서 또 그리스 신화에 주인공 ‘이카루스’의 탐욕이 빚은 형벌은 추락으로서 죽음의 끝을 본 점에서, 잠시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의 역설적인 변을 한 번 살펴보자.
“그런데 독자 여러분, 소설이란 큰 길을 가면서 둘러매고 다니는 거울 같은 것이다. 그 거울에는 때로는 푸른 하늘이 비치기도 하고 또 때로는 길에 팬 진창이 비치기도 한다”하는 이 사실 아닌 사실들 앞에서, 헌데 <누가 나쁜 사람이냐,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 낸 악인들이 아니더냐.>~,
“사람은 그런 거울을 둘러매고 다닐 뿐인데 독자 여러분은 그 사람을 부도덕하다고 비난 하다니! 그 보다는 차라리 간간이 패인 큰 길을, 아니 그 보다 흙탕물이 고이도록 방치한 도로 관리인을 비난해야 할 것이다”고 설파하고 있지만 지금 그 누가 누구를 비난하리오.
아니, <“프랑스처럼 사람사람이 중요한 나라에서 자네는 불행해 질 수밖에 없는 성격이야.”> 그러하니. 지금, 보이지 않는 이 세상, 세월이 흘러가도 맑고 깨끗한 소망의 밝은 ‘희망’이 도도히 흐르면서 멈추지 않을 ‘합리적인 욕구의 진실’의 세계들이 우리에게 그리워질 뿐일 터이라 하리오.
아~아! 더 맑고, 높은 ‘영혼의 자유’와 연관된 숭고성의 인간 가치에 대한 답을 주고 있는 중심 語(어)는 어떠한 것으로부터 ‘억압과 압박 그리고 조정’도 받지 않아 흔들림이 없고 보이지 않아 들리지도 않으나 저 멀리 피안에 있는 탐욕의 소리 ‘악의 진창들’ 넘어 진실한 <영혼의 자유>를 섭렵하고픈 그 열망들만 오직 간절할 뿐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