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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眞)과 위(僞) - <말>의 변증법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양영식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20-01-13 11:12:49 2020.01.13 11:12:49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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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과 진실, 정의와 불의 그리고 억압과 강요 등이 뒤섞여 돌아가는 혼돈과 무질서한 이 세상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살펴보노라면 사색 속에서 인간은 말로 표현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삶의 보편적 가치를 찾아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는 존재라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그러한 연유에서 말을 하는 과정 중 선택된 어휘의 옳고 그름 또는 맞고 틀림의 상대성을 숙고하고 하지 않고서 행한 언어의 의미망 속에 묻혀 있는 ‘나’라고 하는 자아란 존재를 들여다보며 <진과 위> 속에서 <참>의 세상을 떠올릴 땐 자세를 바로 바르게 잡곤 한다.

 실제로 인간이 언어 사용을 시작한지는 약 20만 년전부터 라는 데, 마음에 담고 생각한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이 지닌 감정과 정서 및 인지들이 평소 우리가 느끼는 감정임에서 말로서 실존하는 인간은 곧 ‘몸과 입과 마음’을 사용하는 존재들이다.

 물론 시공 속에 존재하는 내던져진 실존체로서의 인간은 운명에 저항하면서도 주체적인 삶이 실행되고 있기에 중시되는 말의 사용에 있어서 항상 말투는 조용하고 조심스럽고 진실하게 해야 한다는 이 속 뜻 말의 참 의미에는 말 <뜻, 빛, 향기>가 내재돼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부드러운 말, 진실된 말, 사랑의 말, 지혜로운 말 등 따뜻한 말,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매우 소중한 것임에서 말은 남도 살리고 나 자신도 살림은 물론이겠지만 거짓된 말, 어리석은 말, 비난의 말, 이기적인 말은 남도 죽이고 자신도 죽인다는 사실성을 명심해야만 하리다.

 고래로부터 전해오는 말의 의미를 깊이 유추해보니 ‘입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자기의 몸을 찍는 칼이라고 했음에서 남을 아프게 하는 말이 부메랑으로 자기에게 되돌아 와 자기의 몸을 찍는 도끼가 됨에서 혀 아래에는 도끼가 있음을 이제야 새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번 뱉어버린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고, 남에게 아픔과 상처를 준다는 의미에서 노자는 말을 많이 하면 궁지에 몰리기 쉽다 했으니 중용에서 고려해 보면 단순한 침묵을 넘어 正反合의 변증법적인 침묵의 신묘한 ‘변곡점’이 되는 요체가 되고 있다 하겠다.

 더 나아가서 실존 철학자 하이데카는 말은 ‘존재의 힘’이라, 말이 영혼의 집이 되듯 존재가 사는 ’집‘은 곧 말이라고 한 어귀는 참 놀라운 발견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행하는 사고체계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음을 되새겨 보면서 그 소중함을 터득해야만 하리라.

 다시 말해 인간이란 말을 떠나선 존재할 수 없다는 이 의미는 즉 인간은 언어 자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사유할 수가 없고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없음에서 표현 수단인 말씨나 태도를 바꾸어보면 지니고 있던 생활 태도가 스르르 변화함을 느끼면서 고상한 기품들 드러나게 됨을 알 수 있으리라.

 그럼으로 생활을 해나가는 가운데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에게 <부드러운 말, 진실한 말, 감사의 말, 위로의 말, 용서의 말, 사랑의 말>을 가까운 우리 이웃에서부터 실천하고 나누어 삶의 터전인 우리의 공동체를 위해 언어적 내공들을 실천하며 발현 과정을 쌓아 나가야할 것이리라.

 인간은 현재를 살아가는 현 존재로써 자기를 사랑하고 삶에 책임을 지는 태도에 따라서 성장과 변화를 이끌어 발전할 수 있다하기에 내 삶의 문제를 나 자신이 관찰하고 뒤돌아보면서 항상 삶에 본질과 원인이 내게 있다는 생각에서 항상 나를 격려하고 내가 한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함을 절감하여야만 하리라.

 물론 <나>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삶이 달라짐에서 라틴어에는 이러한 말(Beatos nos esse volumus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다)이 있다. 이 말을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지만 ‘자존감’과 ‘공감성’이 정립되지 않는 어느 누구라 해도 고독을 느끼게 되는 까닭에 행복할 수가 없을 터에서이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자신 안에 마음의 중심을 타자에게 나의 눈과 마음을 돌리면 한낱 한 사람으로서 내가 지닌 마음은 나 역시 보잘 것 없는 전체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게 되므로 영혼의 효모가 될 <나> 너머 타자를 향한 말 보시(報施)의 내공을 쌓아내면 정녕코 행복의 참맛을 볼 수 있을 것이리라.

 이제 결론으로서 우리 인간은 어느 누구라 해도 다 같은 ‘존엄한 인간 존재’이기에 앞서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함으로써 이웃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소중한 존재<‘彼我’>를 위한 ‘공정과 정의’를 위해 실천함을 확인하고 지켜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는 귀한 말씀을 삶의 경구로 삼고 살아 가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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