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사․문학평론가 양 영식
‘우울한 현실’을 극복해 보다 나은 기쁨을 느끼게 할 유머와 해학의 즐거운 세계로 다가서면 신선하고 행복한 웃음의 길목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헌데 웃음과 슬픔으로써 의미와 가치의 양면을 드러낼 정신공학적인 측면에서 슬픔과 웃음 양태는 천태만상의 특성을 띄고 있다.
그래서 적응키 어려움 속에서 ‘불쾌함과 쾌’한 생각을 동시에 발생케 하는 파안대소의 심리적성에서 긍정적 스트레스는 질병을 이겨 내며, 면역력을 높이는 치유의 훌륭한 심리기제인 신조어 ‘웃픈’의 우울한 감정은 긴장 해소에 의한 해학과 유머들로써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다.
그런데 19세기에 물리학에선 팽팽히 조인다는 뜻의 라틴어 ‘균형과 안정’을 깨트리는 자극에서 자신이 지닌 안정 상태를 유지하고 변화에 저항하고 반응하며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의 심리 기제인 스트레스는 걱정에서 온 심리적 염려 및 근심 등이 스트레스의 원인이라고 세일러는 주장한다.
다시 말해 걱정으로 인한 심려, 염려, 근심의 단계로서 또는 경보반응 대응으로서 불안이나 우울 증상이 나타날 때에 웃음과 유머는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행복의 요소 기능이겠으나 울적해서 웃는 너털웃음과 기대를 넘어 너무나도 인간적인 약점이 드러날 때의 쓴 웃음이 있음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기에 걸맞은 웃음은 행복을 표현하는 한 방편이 됨에서 유쾌한 웃음은 건강과 행복의 상징이라 하기에 인간의 환한 웃는 모습 보다 더한 화장법은 이 세상에 없음의 비유에서 웃는 얼굴엔 어려움이 깃들 수 없음에 어려운 재난의 팬데믹 시기를 넘어 힘들어도 웃으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리라.
왜냐하면 웃음은 소화는 물론 신체의 활력 및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할 뿐만 아니라 웃을 수 있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이며, 남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은 물론 타인을 행복하게 해 줄 행복 바이러스를 지닌 행복 전도사 또는 웃음의 매개자로서 우리 사회를 유익하고 복되게 해줌에서 일 것이리다.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쓴 웃음은 두려움이었다는 사실을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삶은 느끼는 자에겐 비극이지만 생각하는 자에게는 희극’이라 했음에도 우리의 인생살이에선 때론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즉 많이 웃는 삶의 지향성을 찬양함에 반해 痴子多笑(치자다소)로서 헤프게 웃는 것을 경계하는 양비론적 모순의 합일이 허다함도 보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누구나 원하고 선택하는 선한 가치 구현을 위해서 또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과 건전한 신념을 갖춘 행복을 위해 우리 사회를 번영으로 이끌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도 웃을 수 있는 사회 문화를 조성하여야 하겠기에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이것은 진정한 행복이 됨에서 ‘울음’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삶에 정화 통로라면 ‘웃음’이 주는 또 다른 페이소스는 삶에 진정한 의미와 가치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 민족에겐 하회탈에서 온 해학의 전통을 지니고 있기에 시름이 깊어 가는 이 세상 웃는 실천운동으로써 <하하, 호호~하하~!>하며 하루를 시작해 보시면 웃음은 ‘명사’가 아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동사’라 하기에, 나 자신부터 스스로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비상 상비약인 <웃음>의 ‘길목’을 터줄 인생의 중심 이야기로서 ‘웃음’을 생활해 나가는 기쁜 날이 되시기를 빕니다. <ilminson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