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사․문학평론가 양 영식
세계의 지성<사르트르>는 ‘자유로 선고’된 인간상의 꿈을, <스피노자>는 ‘합리적 이성의 힘과 사유를 통한 영원한 진리 및 참된 앎’을, <부머>는 ‘정신적으로 만족치 못한 시대에 결여된 삶과 자신에 대한 통찰’을, 그들은 이론적 지식의 성찰이 아닌 구체적인 삶에서 인간 구원의 실천적 지혜와 복음을 고찰한다.
위의 의미를 짚어보면 인간의 마음은 하나의 원(圓) 운동으로서 지향하고자 하는 이상과 가치, 다양한 목표가 있다는 심중(心中)에서, 음식이 주인공인 일본 다큐드라마는 인간에겐 ‘먹는 건 최고의 치유’란 기승전결로 “일한다, 허기를 느낀다, 찾는다, 먹는다, 만족한다.”라는 실존성의 규범들을 조명해 낸다.
특히 ‘고유한 미식(美食)’이란 오프닝 대사 <누구에게도 먹는다는 포상이란 행위야 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평등한 최고의 치유다>라는 명제는 생의 목적임에서 조선시대의 제왕들은 어떤 섭생을 하였을까 하는 의문을 주시해 보며, 그 도덕성과 철학의 영역을 투영해 보고자 한다.
순간 떠오르는 ‘수라상’의 가치와 의미는 오직 산해진미로서 차고 넘치는 질탕한 성찬이었을까? 하는 편견의 추정들은 우주의 바른 ‘인과 법칙’과 근본인 ‘이(理)’의 한계와 가르침을 인식치 못한 편향적 어리석음임을 알게 해 준 사실들이었다.
물론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최소한 인간은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며, 어딘가 거주해야 하고, 자야하며, 타인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전제가 기본이라 하겠으나 극단적인 물신숭상의 부조리한 현대사회에서 자연과의 공존이란 의미는 탐욕이 끝이 없는 인간에겐 한낱 공염불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의예지 덕목인 왕의 인성 교육은 중용 그리고 천명에 따르는 ‘인내천’을 바탕으로 승화된 왕의 솔선수범을 통해 유교적(과유불급의 중용)근검절약의 생활철학을 물 흐르듯 본받아 행함을 지향하면서 고답적인 휴머니즘(군자의 도)에 이르도록 그 지극함을 다 했을 것이리다.
사실 제왕 스스로가 어떤 체험과 한계를 초월하고자 한 리더십의 측면에서 ‘수라상’이란 왕의 밥상을 단지 높여 부르는 말로 몽골어인 ‘Sulen’의 어원으로서 고려 원종 때 음식을 뜻하는 ‘슐라’에서 온 것일 뿐, 조선시대의 수라상은 산해진미로서의 진수성찬이 아닌 절제된 식단 즉 ‘극기와 나눔’의 긍정 철학이 배어 있었다 한다.
또 다른 한편 우리의 오랜 전통 음식인 '비빔밥’은 색과 맛 지역 및 자연과 인간이 한데 어우러진 ‘조화와 융합’의 신묘한 철학이 스민 맛의 진수들<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에 더하여 누구나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하는 신묘한 융합의 맛 산물로서 구수하고 맛있는 그 냄새는 코끝을 자극하는 오방색이었다.
이 비빔밥은 19세기 중엽 음식 백과인 <시의 전서>의 근저에서 보면 우리의 오랜 제사 풍습에서 품앗이 문화를 만들어 일구어 낸 마치 이것은 잘 가꾸어 낸 화원을 옮겨 놓은 듯 다채롭고 아름다운 꽃 밥처럼 영양가도 일품인 대표적 서민 음식으로서 다의성을 지닌 음식 문화의 효수라 하겠다.
그리하여 수라상과 비빔밥의 신묘한 의미를 지닌 그 깊은 복음의 지혜와 향내가 오래 오래 우리 민족의 삶에 정기로 이어지어, 고유한 서사성들이 소박한 상차림의 ‘절제된’ 식단으로서 시공간(時空間)의 철리로 이어져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삶의 목표로서의 생활 규범들이 식생활 문화로서 계승 발전되며 더욱 심화시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라 하겠다.
더하여 이것이 주는 복음의 지혜로서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실천운동으로써 멀리멀리 퍼져나갈 구원과 성찰을 소망하는 한편 인생의 의미를 자신의 안에서만 찾으려 고뇌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다른 누군가와도 더 나눌 수 있는 가치로써 우리의 삶 속에 새로운 마음들이 하나 되는 ‘나눔의 의미와 <소망의 미래>가 멋지게 심상화되는 융합 문화를 엿 볼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ilminson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