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칼럼니스트/전 전북도의회 의장 김철규
“나는 고향을 버리지 않습니다. 내가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죠. 시간이 흐르면서 그동안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건강을 지키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내년 봄 안에 군산으로 물메기탕 먹으러 가겠습니다. 이제 내년 봄쯤이면 서서히 작품활동도 하려고도 합니다”.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생활하면서 필자와 근황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군산의 물메기탕에 대한 추억어린 90세의 고은 노 시인의 ‘스치는 세월’을 더듬는 듯한 소회는 필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군산출신 고은 시인은 한국문단을 넘어 세계적인 작가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이 시대의 문단거장을 군산시의 ‘브랜드’화로 우리나라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문학의 도시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한동안 미투사건으로 한국문단에 불미스러움이 있었으나 이미 5년여가 지나면서 노 시인은 억울함을 성토하며 한국문단의 명예회복과 새로운 각오로 여생을 문단에 이바지하고자하는 다짐을 엿볼 수 있어서이다.
고은 시인은 수원시의 삼고초려로 안식처를 제공하는 등 한동안 거처로 삼았으나 예기치 않은 일들이 발생하여 현재는 분당에 자택을 마련,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시대에 군산시는 채만식 선생을 뒤이어 한국문단의 거장으로 탄생한 고은 시인이 있다. 젊은 시절의 질곡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으나 한때는 효봉 스님의 상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에 몰두하면서 드디어는 1958년 현대시에 추천을 받아 문단에 등단하면서 1962년은 환속하여 문필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기도 했으며 국내에서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장, 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의장 등을 역임했는가 하면 미국 버클리 대학, 하버드 대학 등에서 시를 강의했다. 또한 서울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으며 단국대학교 석좌교수로 활동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고은시인은 1974년부터 제1회 한국문학상, 만해문학상, 중앙문예대상, 대산문학상, 불교문학상, 단재문학상, 영랑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 우리나라 유명 문학상은 거의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는 만인보로도 유명하지만 유명 작품 속에는 닫혀있는 현실을 뚫고나가는 실천적 노력이 특징적으로 나타났다는 평론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만인보는 30여개 국어로 번역하여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이처럼 세계적 시인으로 알려지면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르내리는 등 우리나라 문단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고은 시인이다.
이러한 고은 시인이 군산출신이라는 사실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한국의 새로운 문단사를 군산에 정착시켜 군산시의 브랜드로 만들자는 주창이다. 필자는 2017년 6월6일자 전북도민일보 도민광장에 『고은 시인을 모셔오자』는 칼럼을 썼다. 실효성은 없었으나 2018년에 미투사건이 번지면서 거론이 중지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렇지만 지금쯤은 앞에서 지적한대로 고은 시인은 군산의 자랑이요, 우리나라의 보배로 여겨지고 있음에 시민 모두는 환영과 함께 군산시의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문화의 꽃인 문학이 살아 숨 쉬면 그 지역은 발전의 축이 생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산은 1백년이 훨씬 넘는 항구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초라한 채만식 문학관 하나 있다. 종합문학관이 절실한 실정이다. 순천만에는 순천시가 주관, 운영하는 순천문학관에서 김승옥 소설가를 포함 정채봉 등 복합문학관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담양군 산골에는 태안사 입구에 조태일 문학관이 있다.
군산은 2015년 모친가옥을 매입, 2016년 고은 문화제를 진행하다 미투사건으로 중지된 상태다.
여건불비로 미진한 상태이지만 이제부터라도 고은 시인에 대한 이미지 제고를 통한 브랜드로 발전할 수 있도록 시 당국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문학의 메아리는 지구촌을 무대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