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사․시인․문학 평론가 양 영식
<ilminson1@hanmail.net>
지금 이 순간 거울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의 창인 눈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서 인지적인 공감을 한다.
그러나 비추는 것은 겉모습일 뿐, 마음속의 모든 것을 비추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인간은 겉모습만이 아닌 참된 내 모습을 정서적인 공감을 통해 담아내보고 싶다.
헌데 사실 우리는 마음이 그려낸 세계를 보곤 하지만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자신의 눈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만 심혈을 쏟을 뿐, 자신의 참 모습을 내팽개치듯 한 내 행동들이 때론 누군가의 거울이 될 수 있음에서 무소유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인도의 ‘자이나교’ 성자들을 떠올리면서 큰 교훈을 삼고 있다.
그러니까 외형적인 문제만이 아닌 삶 전체를 어떻게 하면 정지(正知), 정신(正信), 정행(正行)을 통한 수행으로써 열반세상을 향해 한 개의 물 주전자와 털 비만을 가지고 자신의 발길과 앉아 있는 그 자리를 쓸고 있는 순수 영혼을 지닌 그들의 고행을 실천하는 표정이 너무 아름다웠고 성스러워 보였다.
그렇게 밝고 즐겁게 자리를 쓸고 있을 뿐인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낀 인간의 눈의 특성은 3가지 원색을 혼합한 색상만을 볼 뿐, 12가지 색 영역의 빛스펙트럼은 작동해 내지 못한 현실 세계의 모순들 마음속에 증오, 욕심, 이기심, 욕망 등 정서적 공감 세계를 연상해 보다.
사람은 참회와 고행의 업에 더하여 가질수록 불행하고 죄를 지을 가능성도 커진다는 생활 중에서 가시 신경을 통해 바라본 외모적인 겉모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겉모습을 위해 꾸밀 터에서 겉모습만을 투영해 내려고 하는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다.
그런데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거창한 사상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매일 느끼는 감각 및 감동의 분위기와 기분이라는 걸 알 수 있듯 먼저 마음의 문을 바르게 열면 놀라운 미래와 희망은 점점 더 솟아오르리라는 생각은 바른 행동으로 이어지리라는 사려이었다.
따라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스스로 자기를 만들어 갈 수밖에 없음에서 대상 자체가 드러나지 않으며, 시각 중추 변조에 반응하는 것만 보이는 마음의 창인 우리의 눈은 세 개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외향적인 눈, 상향적인 눈, 그리고 내향적인 역할 등이다.
따라서 밖으로 향하는 눈은 자연과 객관적 대상과의 관계로, 위로 향하는 눈은 신과 종교적 세계로 향하고, 안으로 향하는 눈은 내면적 세계 즉 정서적 공감의 세계로 향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함에서 미래지향적인 꿈과 비전을 지닌 자의 내향성은 내면적인 사색과 함께 언제나 높은 곳에 관심을 가지며, 끊임없이 탐색하려는 눈을 밖에서 안으로 돌리며 남을 통한 자기발견 및 자기 성찰로서의 자기를 응시하는 눈을 가지게 될 때, 내적인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는 것이리다.
그래서 인간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서 예(禮)를 다하고 바른 의리로서 의(義)를 지키며, 청렴, 결백, 검소 그리곤 바름을 일컫는 염(廉)을 실천에 옮겨 감에 따라 욕됨을 아는 치(恥)를 마음에 담아 맑은 눈을 통해서 더 넓게 멀리 보고 행동할 수 있도록 마음속에 세상을 바르게 보는 공감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리라.
이처럼 우리들은 상대를 가리키며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 속에서 나를 응시하는 가운데에서 플라톤이 거론한 이야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하니까 ‘영혼이 이데아의 세계에 대해서 향수를 느끼는 세계와 같은 경지에서 감지되듯’ 언제나 조용히 명상하는 가운데 남을 도우며 얻는 행복감이 삶의 기본이 되어야 하리다.
모름지기 자신을 깨달을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논함에 앞서서,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일어서는 자는 어린이고, 남에게 빌붙어 자라는 것은 담쟁이이며, 남의 행동에 따라 변하는 걸 그림자의 논리라 한다면 남의 것을 훔쳐 자신의 이익으로 삼는 자는 도적이며, 남을 해쳐 자신을 살찌우는 자는 승냥이일 터라 하겠다.
해서 우리들이 엄숙하고 맑은 눈을 가지려면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하기에 앞서 만일에 자신의 몸은 남을 배려 할 하심(下心)의 자세를 취해야 하겠기에 가식적인 사랑과 헌신을 가장하는 위선적인 행위를 일삼는 사람의 종국은 마침내 삭막한 세상 풍경 속으로 빠지게 돼 자각적인 공정과 정의의 진정한 주체적 창조인은 될 수 없을 것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