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사․평론가․시인 양 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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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면서 글을 써온 지 어느덧 60년을 되돌아 되돌아보니, 지내온 오늘 두 화두의 어휘에 큰 관심을 가지는데, 문학적 현실에서 본 dilettantism(재미로 하는 문학)과 fetichism(물신화物神化 지향문학)으로의 치우침 그 경향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피력해 보다.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하고 시(詩)를 지향(指向)한다.”라는 쇼펜하우어 말의 의미 곧 모든 예술의 배경에는 시 정신이 내재해 모든 예술 창작은 시(詩) 상태 속에서 인간의 정신력을 심미적으로 고양시킴으로써 철학보다 포괄적이고 종교보다 관용적이라고 정의케 된다.
그런데 문학의 기원에 대한 컬럼비아 대학 <몰톤> 교수의 주장을 살펴보면 ‘노래의 가사는 문학이 되고, 노래의 고저장단은 음악으로, 그리고 춤은 무용이 되며 동시대 예술이 나타나지 않은 원시 종합예술에서 문학이 떨어져 발전했음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인류가 문화를 향유 해 온 이래 감성과 지성의 상극(相剋)이란 인위성에 대립 충돌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세계적 고대 걸작품이란 보다 더 삶을 진솔하게 그린 성경 문학과 희랍 문학, 셰익스피어 문학 등 괴테 문학이라고 거론케 하는 점에서이다.
이의 요지는 인간이 표출하며 창조한 최고 가치로서 문학적인 삶의 주요한 제재가 사물(事物)과 사리(事理)에 관한 사유(思惟) 곧 균형과 조화 등 인간이 가장 평안하게 느낄 안목을 제시함에서 문학은 추상적 측면에 고뇌(苦惱)하는 와중에 그 실체들이 현실과는 좀 유원(悠遠)하나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를 더 인간적임으로 변화시켜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문학의 흐름은 현학(衒學) 중시의 부작용으로 인해 ‘인간실존’의 인간 세상을 보지 아니하고, 기계적 판단으로 인간 가치의 틀을 고정하며 실존적 삶의 거리를 좁히지 못함에서 문제의 의문이 발생 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됨에서 이겠다.
이 논지에서의 담론은 즉 지성과 감성의 알력(軋轢)이 결실(結實)된 것이 인생이라면, 문학은 어떤 무게와 굴곡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질문들이 제기되는 표상 때문에 ‘문학의 이상(理想)’은 예술적으로 좋은 삶의 성취라는 논란에서의 응용이 끊이지 아니함에 있는 것이리라.
물론 문학예술은 인간의 대상들과 관계를 맺으며 삶을 연구하고 이룩한 인간의 깨달음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하기에 언제나 사무사(思毋邪)로서의 특성에 초점이 맞추어 져야 하겠지만, 모든 문학이 인기와의 영합에서 벗어나 문학과 인생은 함께 공진화(coevolution)로의 현실에서 미래로의 진입에는 자유와 책임은 큰 것일 터이다.
그러함에도 문학의 발전만큼 삶이 더 행복해지지 않았음에 큰 불안은 존재하게 되는 것이며, 인간의 자유와 행복 요인은 극소수 인간을 위함이고, 다수 인간은 노예의 지위에서 물질 노예의 지위에 전락되었음을 문학성(文學性)은 간과하고 있음을 재기하는 바이다.
따라서 우린 인간의 삶과 문학적 소망의 공유성이란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이 이루어진 대다수에 반해서 소유하지 않은 계층은 생명 유지를 위해, 오직 자본에 예속되는 물질 노예의 지위로의 전락이 거론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으리다.
이 사실의 흐름은 정신적 본류(本流)를 상실한 물질적 탐닉 즉 심령의 불안으로 인한 문학 본질을 일별(一瞥)해 보아도, 현대문학의 ‘광기(狂氣․folie)’와 ‘불가사의(不可思議․agnostic)’한 문학성(文學性)이 대중을 절연시키는 문학(文學)으로 대중과 격리되어 문학의 이해를 어렵게 한 원류로서 또는 그 난해성이 현실적으로 오늘의 현대문학으로 계승 퇴보되고 있음을 주목하여야 하리다.
결론으로서 이러한 각성에서 문학예술의 가치는 인간의 존재 의미를 찾는 독창적인 창조 행위의 절대적인 고뇌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와 아름다운 가치를 탐구하고 끌고 가면서 실존하는 세계의 현존성에 대하여 끊임없는 천착이 계속되는 예술 문화로의 가설은 생각할 수 있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