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새만금 사업의 태동1<새만금사업… 최초 기사를 쓴 기자>
망망대해가 육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바다 연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를 안다. 꿈은 현실이다.
바다를 막아 성토를 하면 육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조상들은 조수에 따라 드나드는 연안을 막고 또 막고 하여 간척지 논을 만들고 대지를 만들어 건물을 짓고 삶의 터전을 가꾸어 왔다.
그렇게 하여 서해안은 점점 줄어들고 간척지는 늘어나는 현상이다. 서해안의 지도, 즉 국토확장 농토뿐만이 아니라 용도에 따른 시설물이 설치된다.
나는 소년시절 섬마을 고향 야미도 큰 산에 올라가 군산방향을 바라보면서 ‘저 바다를 막으면 육지가 되어 걸어서 군산을 갈 수 있는데’ 하는 꿈같은 생각을 하면서 성장했다.
그러나 학교를 마치고 전북일보 기자가 되어 동분서주하는 기자생활을 하는 도중 1977년 11월 11일 밤9시 15분에 당시 이리역 폭발 사건이 발생, 현지에서 취재활동을 해오다 다음해 사고수습이 되어가는 도중에 국토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싶어 이리지방 국토관리청을 찾아 청장실에 들렀다.
청장과의 대담과정에서 전국지도와 전북지도 두 개를 보면서 “전북관내의 서해안에 대단위 간척사업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을 했다.
청장은 그 물음에 “참 좋으신 질문입니다” 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일제강점기시절 일본인들이 고군산군도 앞까지 간척을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해방직전에 취소하고 말았다”며 들려준다.
나는 귀가 번쩍했다. ‘바로 이거구나’ 하며 ‘서해안에 국토확장과 식량안보차원에서 대단위 간척사업을 하자‘고 국내 언론사에서는 최초로 전북일보에 보도를 했다.
이러한 주창은 결국 국가정책 사업으로 발전하고 드디어는 ’새만금‘이라는 명칭이 부여되고 사업은 진행이 되었다.
1991년 11월 28일 부안군 대항리에서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 장관과 최용복 도지사와 나를 포함한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대한 기공식을 거행, 테이프 커팅을 했다.
내가 기공식에 참석하게 된 것은 5.16 군사쿠데타로 해산된 지방의회가 1991년 6월 30년 만에 부활됨에 따라 전라북도 의회에 진출하여 도의회 의장이 되어 주민을 대표하는 의장자격으로 참석, 영예로운 기공식 테이프커팅을 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오늘의 새만금 사업이다.
나는 2008년 2월 18일 ’김철규 새만금 인생 30년 기록‘으로 ’범씨 천년도읍지 새만금 땅‘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발행했다. (도서출판 정명)
이 책에서 ‘나의 인생 역정기, 새만금 사업…최초 기사를 쓴 기자’라는 제목으로 오늘의 새만금 사업의 전말을 기술해놓은 내용을 밝히고자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새만금 사업. 말만 들어도 그놈에 새만금 사업이 무엇인가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새만금 사업이 내 인생의 최대 보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좌절을 안겨준 악몽 같기도 한 것이다.
새만금 사업으로 군산에서 정치를 시작하면서 영욕의 질곡이어서다.
새만금 사업은 그만큼 내 인생과 더불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함께해온 김철규 역사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년 시절부터 보아온 군산 옥구 앞바다가 썰물 때면 고향인 야미도 앞까지 광활한 갯벌이 드러내 보이고 있어 이곳이야 말로 간척지의 최대 적지로 보아온 것이 오늘의 새만금 역사를 엮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