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 김철규 시인(전 전라북도의회 의장)
제39회 정치에 입문하다. 경찰, 사회자 김철규가 누구냐에 온통 신경
김대중 총재가 연설 장소인 옛 역전광장에 도착한다. 김대중을 연호하는 군중의 소리는 하늘을 찌를 듯 울려 퍼졌다.
연단에 오른 김대중 총재는 “8월의 폭염에 이토록 많은 군산시민이 모인 것은 오직 완전한 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어 자유와 평화와 정의가 바로 서고, 서민의 생활이 윤택해지는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아닌가 합니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독재정권의 그늘에서 인간다운 삶을 갈구하는 우리 서민들의 실상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군사정권의 그늘에서 숨 막히는 하루하루를 견디어내는 우리의 참된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겠느냐가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정권교체가 최대의 목표입니다. 민주주의 쟁취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시민 모두의 힘이 뭉쳐질 때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민주시민입니다. 자유를 쟁탈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다 함께 힘을 모아 억압과 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날까지 민주적 가치를 이루어내는 일에 모두 힘을 뭉치는 역할에 솔선수범합시다”라며 카랑카랑한 특유의 목소리가 군산시가지에 울려 퍼졌다.
김대중 총재는 연설을 끝내고 바로 상경했다. 군중은 군산을 떠나는 김 총재에게 “군산을 잊지 마세요” 하며 김대중 연호를 하며 헤어진다.
모인 군중이 해산하면서 평소 친구로 지내는 당시 김 모 정보계장이 나를 만나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다.
사전에 사회자 정보를 입수하지 못한 문제도 있지만, 당연히 군산시 지구당에서 사회자가 나올 것으로 알았으나 뜬금없이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은 김철규가 사회자로 나왔으니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나는 실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친구이니까.
“선거법에 따라 현역 언론인은 정치 행위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으나, 어차피 내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하는 만큼, 지방정치에 도의원으로 출마할 마음이 있고 옥구지구당 위원장인 김봉욱 국회의원의 특별한 요청으로 사회를 봐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친구는 정말 지방정치를 하가로 했느냐며 꼬치꼬치 묻는다. 내년 1991년부터 지방자치제 실시가 확정적이라며 아마도 고향인 옥구군 제1선거구(옥도면, 옥서면, 옥구읍, 회현면)에서 출마하게 될 것이라는 뜻을 비쳤다.
아마도 올해 12월 안으로 군산에 사무실을 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언질을 주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정치인 같더라”라면서 “차라리 국회의원 출마를 하면 어떠냐”고 한술 더 뜬다. 국회의원 출마는 공천이 결정적이기 때문에 현역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평소 지방자치를 생각해온 일이 있어서 도의원에 출마할 것이라고 내 뜻을 밝혔다.
오랜 세월을 통해 정치를 하려면 사회를 배운 뒤 정치를 해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이 있었기에 신문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지만, 막상 정치를 하려면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당초 국회의원을 생각했지만 시기가 적절치 않아 기다리던 중 지방선거가 시행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원래 지방자치제는 1949년 지방자치법이 제정된 후 1952년부터 10년간 실시했다.
그러나 제1공화국인 자유당 정권에서는 지방자치단체를 정치 도구화하고 지방의회와 단체장을 중앙정부의 지휘와 통제를 하고 있어 지방자치는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제2공화국을 거치는 과정에서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지방자치 해산으로 지방선거는 중단되었다.
그 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당시 야당 총재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제6공화국에서 30년 만에 지방자치제가 부활하여 1991년 3월에는 기초의원, 6월에는 시. 도의원인 광역의원 선거가 실시된 것이다. 이 광역선거에 출마하여 당선과 함께 전북도의회 의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