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박사‧문학 평론가‧시인 양 영식
행복한 공공선을 위한 민주의 꽃인 선거의 본질을 표방한 풀뿌리 민주주의는 구호만으로 타자와의 ‘다름’을 좋은 것과 동일화할 뿐, 상호 배타성의 확산에서 세상은 변했으나 진심(眞心)의 실체를 반성하고 바꾸는데 소홀함으로써, 그 생명력을 차츰 잃어버리어 국익보다 당파이익과 정략만이 추구되는 현실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다.
돌이켜 보건대, 정치적 가치관(대인자 언불필신 행불필과 유의소재 大人者 言不必信 行不必果 惟義所在)의 틀은 직관적인 생각의 일탈로 구호만의 성찬으로 혼란만 가중되었고, ‘공정과 상식’에 의한 법치를 오히려 비웃는 듯, 자신들에게 이로운 방향으로만 내달리는 현 시국에 국민 다수는 정의와 민주를 외치지만 득표만을 향한 진영대립과 망국적인 정치 선거요인은 시급히 개선돼야만 할 것이리라.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바른 리더를 선택할 하나의 권리로써 후보의 청렴성과 역량 위에 미래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전달자가 선출되어야 하겠으나 현실적인 선거 전략에 치우쳐 막가파식 선거운동의 폐습이 만연된 선거에서는 선거 제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에 따라서 민주주의의 발전이 이룩될 수 있음을 깊이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리다.
헌데 권위주의 진영의 기성 정치인의 현실적인 득세로 야기된 민주주의 일탈 및 무능과 부패에 대한 불만 및 불신은 마침내 ‘매카시즘’과 ‘대중 영합’의 편승으로 인해 선동 정치의 위기에 대응하는 해법으로써 선동적인 공격 상황만 외쳐대는 전근대성을 지닌 후보는 당연히 낙선되어야 함에서 우리의 미래와 통합을 위한 효율적인 비전과 바른 정책 대결의 신호탄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자신과 타인을 ‘승리와 패배’의 이분법으로 인식해 패배를 두려워한 결과는 후보자 스스로 선거의 노예가 됨은 물론 반엘리트주의 즉 권위주의를 지향케 됨으로써 후보자의 인생을 망침은 물론이며, 국가 발전에도 큰 해악을 끼치는 잘못된 선거 관행(무능과 부패)은 준엄한 심판이 꼭 필요할 것이리다.
다만 정치를 떠받치는 역학관계 요소인 정치적 혁신이란 곧 소수만의 누림을 다수가 누리도록 만드는 정치 논리에서 볼 때, 자유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뿐, 차별의 철폐를 낳은 선거 현실은 패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선택한 굴레’로서 갈라 쇼 같은 선거 열풍으로 변질된 ‘팬덤 정치’=대중 영합 즉 개딸(개혁의 딸) 및 계파 등등으로서의 상징적 선동은 투쟁과 타도만을 부추기며 반사회적 혼란을 일으킬 뿐일 터에서다.
따라서 안전하고 살기 좋은 사회 발전과 번영을 위한 ‘성찰과 소통’의 지혜로 뿌리내린 선도적인 선거문화에서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설득을 가치로 삼는 로고스 형 후보냐 또는 감정에 호소하는 파토스 형 후보냐에 따라 결과에 돌변을 일으킬 순 있겠으나, 함량이 부족해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할 후보가 리더가 탄생하는 일은 꼭 막아야 정치가 바로 설 것이다.
일단 정치적으로 다수의 민중은 무소불위의 정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원치 않는다. 고로 사회문제에 냉담해 내심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행동을 일삼는 후보자를 배격해 ‘분노의 시대’에 모두 하나 된 선거 풍토로서 중대성 즉 <섬기는 리더>가 꼭 선출돼야 함에서다.
현실적으로 겉모습의 가치를 지향하며 당선만을 목표로 혹세무민하는 후보를 바라보는 유권자의 근시안적인 자세는 예리한 자기성찰과 다스림을 통한 주권재민의 올바른 투표권자로서의 품격을 행사하는 ‘소금과 빛’의 선거문화가 이루어지도록 선순환의 선거 제도와 계도는 꼭 필요하리다.
요는 주권자의 뜻으로서 피워 낸,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은 민주주의 금자탑이기에 곧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 근간으로서의 <자유의 질서>가 스민 비전과 미래로 이젠 확 바꿔야 할 때이겠다. 왜냐면 결과적으로 자신의 심리적 쾌감에 빠져 부패와 협잡과 무능으로 민주화를 후퇴케 하는 개혁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리더가 도태되어야 할 이유로서 국민 행복을 위한 진정한 ‘선거의 본질과 통섭’의 길을 통해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