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재능기부 눈길…늦은 나이에도 열정 그대로
<왼쪽부터 채규인, 채범석, 채승일씨 3대 부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남다른 학구열로 주경야독 한 배경은 결국 공부를 통해 베푸는 삶을 실천하고자 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 정신을 잘 이어가겠습니다.”
최근 군산대 졸업식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채승일(32)씨 말이다. 그의 전공은 체육학.
자기 분야에 걸맞게 태권도, 합기도 특공무술, 공권유술 등을 수련한 도합 20단의 종합 무술을 자랑한다.
하지만 화려한 스펙만큼 그가 더욱 주목을 끄는 이유가 있다.
바로 3대가 박사학위를 취득했기 때문이다. 채승일씨의 부친(父親) 채범석(58)씨와 조부(祖父) 채규인(88)씨 모두 박사출신이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마치 가업을 이어주듯 배움의 삶이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주위에선 이들을 ‘박사가족’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기계발에 대한 꿈을 넘어 주위에 재능과 지식기부를 펼치는 이들의 삶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아마 ‘박사’라는 거창한 타이틀보다는 하나같이 순수하고 배움과 나눔이 일상화돼 있는 진한 인간미가 느껴지기 때문일 터.
이제 막 박사모를 쓴 채승일씨의 꿈은 교수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이 길을)선택하게 됐다.
현재 전공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타 대학 시간강사에 나서며 자신의 꿈에 한 발짝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다.
물론 오랫동안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쉽지 않는 길이고 그래서 곁에 있는 가족(아내)에게도 미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도 잘 알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슴에 심었다.
이 같은 도전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늦은 나이에도 포기 않지 않는 모습을 친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배움이란 끝이 없다.”
이는 조부 채규인씨의 공부철학이다. 1952년 전북대를 졸업한 뒤 교사로 활동한 채규인씨는 1992년 전북대에서 농학박사를 취득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66세.
이제 여유 있게 인생을 즐길 때라는 주변의 이야기에도 그는 (배움을)멈추지 않았다.
육체적으로는 나이가 들었을지언정 꿈을 꾸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채규인씨는 박사취득 후에도 방송통신대학에 입학,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또 배웠다.
현재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컴퓨터 교육 및 각종 농업기술들을 습득하든데 열정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규인씨는 “배움에는 나이와 직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평등하게 공부를 통해 많은 것을 깨우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 했던가. 이 같은 배움과 공부의 즐거움을 아들 채범석씨가 닮았다.
채범석씨의 인생을 요약한다면 ‘배워서 남주자’이다.
공부를 통해 습득한 지식은 남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로교통공단에서 근무 중인 채범석는 공부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단국대를 졸업하고 2003년 성신여자대학에서 경영학 박사를 딴 채범석씨는 현재 교통관련 자격증만 40개에 된다. 우리나라에서 바퀴로 굴러가는 차종 면허는 모두 가지고 있을 정도다.
결코 공부가 쉬워서가 아니다. 사회에 진정 이바지하는 길잡이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공단에 입사한 뒤 교통관련 상담을 해오면서 ‘자동차 보험’ ‘여성운전백과’ 등 교통관련 서적등도 수차례 펴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인간 자동교통판매기’로 부른다. 그만큼 아는 것도 많고 물어보는 즉시 속속 해결해준다는 의미에서다.
특히 채범석씨는 ▲한라대 토목과 교통공학 외래교수 ▲서울소방학교 외래강사 ▲서울경찰청 운전 행정처분 이의심의위원 ▲지방공무원 연수원 강사 등 교통관련 업무 30년 동안 무려 700쪽의 이력을 자랑하고 있다.
채범씨는 “공부해서 남주냐라는 말이 옳은 시대는 이제 지났다. 스스로 먼저 깨우쳐야 하고, 깨우친 후에도 남을 위해 쓸 줄 알아야 진정한 배움이라 할 수 있다”며 앞으로도 지식 재능기부를 계속 펼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도전적인 삶을 곁에서 바라본 채승일씨는 “박사라는 것이 지성은 물론 이성까지 겸비해 타인을 배려하고 지적인 성장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배움에 대한 즐거움을 잊지 않을 뿐더러 두 분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