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병원이 들어설 백석제가 고려시대 이전부터 존재한 역사유적지라는 주장이 제기돼 향후군산 새로운 쟁점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부지 선정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군산 전북대병원이 사실 관계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북시민사회단체는 6일 전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군산 전북대병원 부지 백석제 추진 중단과 백석제를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현강역사문화연구소 이우형 소장의 주장을 빌어 농어촌공사와 군산시, 전북대병원이 주장하는 것처럼 백석제가 1940년대가 아닌 고려시대 이전에 축조됐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이 같은 근거로 1916년 일제가 측량 제작한 1:5만 지도와 1896년 전라북도 각 군 읍지에 수록된 옥구지도에 백석제가 명확하게 표기돼 있다고 제시했다.
또 1760년경 조선 영조때 관(官)에서 편찬한 ‘여지도서’에 백석제의 크기와 규모가 기록되어 있다는 자료도 내놨다.
특히 고려 말 충신인 야은 길재(冶隱 吉再, 1353~1409)의 글과 행실을 기록한 ‘야은선생속집’에도 백석제가 ‘료화제(蓼花堤)’라는 이름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백석제는 문헌상 기록으로 이미 고려시대 이전에 축조한 것이 분명하며, 정밀한 조사를 실시할 경우 백석제의 초축시기가 삼국시대 이전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는 이우형 소장의 주장을 근거로 이들 단체는 설명했다.
따라서 이들 단체는 현재의 문헌 자료만으로도 군산 백석제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해 보호,관리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백석제와 같이 문헌을 통해 고려시대 이전에 축조가 확인된 저수지는 거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백제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기록이 확인된 김제 벽골제가 국가 사적(사적 111호)으로, 삼국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하는 상주의 공검지와 제천의 의림지의 경우 도지정 문화재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백석제는 과거 군산지역의 중심지였던 옥구현과 옥구읍성, 고려 충신인 고용현 선생과 제주 고씨의 정착 역사, 군산의 정신을 상징할 수 있는 염의서원 등과 함께 하나의 권역으로 군산시와 전북도가 역사문화지구로 조성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농어촌공사측은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주장과 관련해 “현재 농어촌공사 보존서류에는 1945년 이전 설치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또 “만경의 능제, 군산의 미제 등도 고려시대 재래지를 일제 강점기에 증개축해 유지되고 있다”며 “백석제의 경우도 고려말에 축조된 재래지 여부와 관계없이 능제, 미제와 다르지 않게 농어촌 정비법에 규정된 내용으로 관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새마을지회 등 10여개 지역 사회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어 군산 전북대병원의 조속한 건립을 촉구했다.
이와관련 군산지역 한 향토사학자가 최근 도내 환경사회단체가 제기한 백석제 국가지정문화재 등록 요구와 관련해 역사적 고증이 부족하다며 이들의 주장을 뒤엎는 입장을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복웅 사)군산역사문화연구원장(전 군산문화원장)은 9일 보도자료를 통해 환경사회단체가 ‘현강역사문화연구소 이우형 소장의 주장’을 인용해 백석제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것은 그 가치가 부족하다는 견해를 공식 밝혔다.
이 원장은 이우형 소장이 주장하는 ‘옥구군지’와 ‘여지도서’ 등 지방편찬 역사서에 기록된 저수지임은 맞으나 ‘여지도서’ 이전의 정사 즉 ‘세종지리지’(단종 2년. 1454년), ‘동국여지승람’(성종 12년. 1481년) 등 문헌자료에는 백석제의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옥구현의 미제지와 임피현의 호산제는 역사적 연대가 앞서고 규모나 크기에 있어 보존될 만한 가치가 더 큰 상황에서 백석제 문화제 지정 추진은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야은 길재의 문집에 나타난 료화제가 백석제라는 주장 역시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했다.
료화제라는 지명은 야은 길재의 개인 문집에 등장하는 명칭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통틀어 군산(옥구, 임피, 회현)의 어떠한 문헌에도 등장하지 않는 지명이며, 특히 군산문화원에서 발간한 ‘우리고장지명유래’에서도 확인할 수 없는 명칭으로 백석제가 료화제라는 지명은 그 증거가 희박하다고 밝혔다.
이복웅 원장은 “조선시대 수많은 지도서에서도 백석제와 료화제는 찾을 수 없는 것을 볼때 백석제는 역사적 고증이 부족하다”라며, “그나마 1945년 저수기 개축작업으로 말미암아 전통적 저수지의 원형이 훼손돼 있어 환경단체가 주장하는 문화재적 보존 가치는 부족하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