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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수탈의 상징 군산항역 복원 여부 관심

일제강점기 쌀 수탈 역사의 상징물인 군산항역(群山港驛)복원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17-08-02 09:06:54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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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쌀 수탈 역사의 상징물인 군산항역(群山港驛)복원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군산항역에 대한 변변한 자료가 없어 원형 그대로 복원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군산시는 최근 군산항역이 수탈의 아픈 역사를 지닌 상징물이라는 점에서 복원 필요성을 인식하고, 군산항역 고증 및 기록화조사 용역을 벌이고 있다.
 

군산대가 맡은 이 용역은 군산항역의 당초 위치와 건물 구조·규모 등에 초점을 맞춰 진행중이다.

 

하지만 군산항역 위치는 물론 건물 등에 대한 고증작업이 쉽지 않아 복원 결정시 사업초기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현재 극히 일부 자료가 남아있긴하나 특히 당시의 군산항역 건물 구조 등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고증자료가 턱 없이 부족한 탓에 문헌 조사를 통해 군산항역 건물의 모습과 규모를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현재 군산항역의 규모는 임시군용철도감부를 근거로 갑형(50~60평), 을형(48평), 병형(38평), 정형(30평) 등 4종류의 표준설계중 한 가지로 축조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축양식의 경우에도 표준설계에 의한 일본 목조양식이거나 일본의 전통적 건축 형태와 서양의 고전적 양식을 결합한 혼합형 역사로 짐작하고 있다. 

 
군산항역 위치는 군산항 수축공사 평면도를 통해 현재의 세관 뒤편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군산항역이 복원되더라도 원형복원에 대한 논란의 소지도 남겨두고 있다.

 

이처럼 시가 군산항역 복원을 추진하고 나선 것은 당시의 쌀 수송과정과 교통발달사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근대역사 상징물로 판단하고 있어서다.

 

문헌에 따르면 군산선의 종착역인 군산항역은 일제강점기인 1931년에 지어졌다.

 

장미동 근대역사박물관 뒤편 내항에 자리한 군산항역은 개찰구만 있는 작은 역이었다.

 

하지만 화물차 운행은 하루에만 150량에 이를 정도로 활성화됐다.

 

특히 군산항역은 배에서 내린 승객들이 열차에 승차한 뒤 엣 군산역을 지나 전주 등 내륙으로 이동하는 교통수단이었다.

 

이 역에서는 군산과 전주를 하루 4차례, 크기가 작은 협궤열차가 오갔다.

 

이 열차의 운행시간은 1시간 40분, 열차 요금은 지금의 1만원이 넘는 1원40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을 놓고 보면 군산항역은 당시만해도 여객 및 화물수송의 중심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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