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열린 공간 이전 목소리
“남들처럼 떳떳하게 세상을 살지 못했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밤낮 눈물로 지새워야 했지. 그저 분하고 원통하고 억울하고…바라는 것이 있다면 일본이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는 거야.”
지난 1991년 8월14일 국내 최초로 (자신이)일본군 \'위안부\'임을 공개한 故 김학순 할머니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김 할머니는 우리 나이 17세에 일본 군인에 의해 위안소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었고 많게는 하루 7~8명의 군인을 상대하며 비인간적인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으로부터 \"잘못했다\" 소리를 듣는 것이 원이라 던 김 할머니는 끝내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지 못하고 지난 1997년 12월17일 폐질환 등으로 세상을 떠나야 했다.
꽃다운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 여성으로서 온갖 수치를 당한 고통의 시간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치유되지 않은 채 쓸쓸히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또 다른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이런 충격적인 말을 전하기도 했다.
“매독 치료제를 맞고 아침이면 소금으로 음부를 씻으면서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70여년이 흘렀어도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이 땅에서 자행된 어린 소녀들에 대한 일제의 잔혹한 인권 유린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이자 교훈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전국 곳곳에 세워져 이를 기억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이 지난 2011년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이후 전국에 80여개가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군산에서도 지난 2015년 8월 광복 70주년을 맞아 동국사 내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하지만 2주년을 맞은 지금, 군산의 소녀의 상이 주는 메시지가 시민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다른 도시와 달리 군산의 소녀상이 절(동국사)에 위치해 있어 접근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 조동종에서 한국 침략에 대해 용서를 빈 참사문비 옆에 자리하면서 나름 상징성을 부여할 수 있겠지만 본래 취지를 못 살리는 있다는 지적이다.
소녀상 건립 의도는 기억과 교훈이다.
“일제 강점기, 성노예의 삶을 강요당했던 이 땅 소녀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다시는 전쟁과 폭력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 도시들을 보면 하나같이 광장이나 공원, 시청 등 대중들이 많이 찾거나 모이는 곳이 대부분이다.
소녀상의 의미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의도인 것이다.
올해 5개구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동시에 가진 광주는 관광명소와 구청광장에, 대구는 중앙공원에 (소녀 동상을)세우기도 했다.
오산 평화의 소녀상 역시 시청 광장에 있다.
오산 시장은 최근 열린 1주년 기념식에서 “평화의 소녀상은 광장 속에서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와 시민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동국사에 위치한 군산 소녀상은 아쉬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지역민조차도 존재여부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 김지은(39)씨는 “솔직히 소녀상이 있는지 몰랐다”며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한번쯤 찾아갔을 것이다. 위치가 어디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지역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도 “(군산 소녀상에 대해)있는 것 같기도 하고…”라는 다소 애매한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군산 토박이 김모(43)씨는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상징하는 소녀의 상이 군산에 세워진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다른 지자체에 비해 위치적으로 매우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군산 소녀의 상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한 채 시민들 사이에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만큼 유명무실(有名無實)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젠 군산의 소녀상이 제한된 공간에서 더 넓고 큰 공간으로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동국사서 이전이 힘들면 추가로 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좀 더 많은 시민들이, 좀 더 많은 관광객들이 보고 느끼고 알 수 있도록 하자는 이야기다.
소녀의 상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미래 세대에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확산시키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이다.
제막 2주년을 맞은 지금, 소녀의 상 이전을 신중하게 검토 및 논의 해 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