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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리모델링하자 -내항 원도심 발전전략

수 십 년의 세월이 그대로 멎은 듯한 낡은 거리, 곳곳에 웅크린 일본식 건물, 시내를 에워싼 폐철도와 수 십 미터 크기의 버려진 굴뚝….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8-09-17 12:55:11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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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십 년의 세월이 그대로 멎은 듯한 낡은 거리, 곳곳에 웅크린 일본식 건물, 시내를 에워싼 폐철도와 수 십 미터 크기의 버려진 굴뚝….



군산내항은 일몰은 상당한 볼거리 중 하나다.



금강을 비추면서 지는 해는 하구에 가득 쌓인 토사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면서 강렬한 태양은 내일을 기약하면서 서해바다 깊은 물속으로 빠져드는 광경은 일품이다. 마치 용트림을 하고 있는 군산의 오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일제 수탈과 군산항 = 그런데 이처럼 아름다운 내항이 일제 치하 우리 민족이 당했던 수탈의 상징이었다는 점이 가슴을 짓누른다.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 중 거의 대부분이 이곳을 통해 일본으로 흘러들어갔던 것이다.



1890년대 말 조선에 들어온 일제는 끝없이 펼쳐지는 호남평야를 본 후 금강의 남쪽 끝 한 포구였던 군산을 주목했다. 쌀을 실어 나르기에 더없이 좋은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어촌마을이었던 군산의 일부를 개발, 항구를 건설하는 한편 침략전지 기지인 정착촌을 꾸몄다.



1899년 개항한 항구는 지금 내항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월명동, 영화동주변에 일제는 일본인 집단거류지를 만들었다.



내항에는 약 1㎞에 걸쳐 접안시설을 만들고, 이곳에 6개의 부잔교를 연결했다. 부잔교란 밀물 때 떠올랐다가 썰물이 되면 바닥으로 가라앉는 다리, 일명 뜬다리다. 그리고 인접 지역과 연결된 철도를 이용해 쌀을 실어 날라 항구에 만들어놓은 창고와 주변에 산처럼 쌓았다.



이어 6개의 부잔교에 3000톤급 화물선을 댄 후 끊임없이 쌀을 실어 날랐다. 조수간만의 차이와 육지의 토사 등이 밀려와 쌓이자 아예 준설선을 갖다놓고 흙을 퍼내는 작업도 병행했었다. 많게는 한 해 200만 가마의 쌀을 운송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의 패망과 함께 쌀 운송은 중단됐고 전국 3대항의 위상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요 근대문화유산들 = 군산에는 등록문화재가 적지 않은데, 대부분 항구를 중심으로 몰려 있다. 또한 모두 일제 패망 후 이른바 적산가옥으로 분류됐던 근대문화유산 잔영들이다.

이중 대표적 문화재는 군산 개항 100주년 광장을 중심으로 몰려 있는 옛 조선은행과 나가사키 18은행 군산시점 건물, 군산세관 건물 등이다.



구리 기와를 얹은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당시 군산최고의 건물로 외관은 2층이지만 본래높이는 4층 건물  규모이며 1923년 지어졌다. 나가사키 18은행 군산지점(국가등록문화재)은 1907년 개설한 건물로 부속건물 2개동(창고와 사무실)도 원형을 많이 간직하고 있으며 당시 일본사업가들의 진출과 수탈미곡의 반출, 토지의 강매 등 일제 수탈사의 상징물이다. 전북도기념물인 군산세관 건물은 제1차 군산항 축항공사기간(1905~1910년)중인 1908년 독일 사람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수입한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1990년 초까지 사용하다 지금은 세관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큰 길을 건너면 월명동·신흥동․영화동이다.



일본인 마을을 조성한 지역으로 바둑판처럼 구획조성이 잘 돼 있다. 시내 곳곳에서는 일본식 건물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중 가장 유명한 건물이 신흥동의 히로쓰가옥. 군산에서 큰 포목점을 하며 돈을 벌었던 히로쓰가 지은 일본 무사들의 고급주택인 야시키 형식의 대형 목조주택으로 영화 󰡐장군의 아들 1󰡑에서 야쿠자 두목 하야시의 집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등록문화재)은 내항 부근에서 사찰을 운영하던 일본인 승려 우치다가 1913년 일본에서 삼나무 등 재료를 가져다 이곳에 건립했다. 이곳은 가파른 지붕에 단층식 팔작지붕, 건물 외벽의 많은 창문 등 대웅전의 모습에서 전형적인 일본식임을 알 수 있다. 동국사는 또 군산의 대문호 고은 시인이 머리를 깎고 불교에 입문한 사찰이기도 하다. 대웅전 뒤편에는 일본 대나무가 무성하다. 본래 이름은 금강사였으나 해방 후 동국사로 바꿨다. 대리석 대문 기둥에 금강사라 쓰인 문패가 남아 있다. 여기에는 월명산 금강사라는 명문이 새겨진 범종과 종각이 눈길을 끌고 있다.



◇살아있는 수탈역사 테마코스 = 주로 정원을 중심으로 담장과 부속채 등이 남아있는 목조 일식 가옥 등 비지정 근대문화유산은 20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일식가옥은 거의 대부분 1930․40년대 건축된 건물이다.



주된 문화유산은 1899년 내항과 월명동 일대에 수시탑 인근기념물, 장미동 40 주택, 중앙로 1가 6-11상가, 구)군산시청 3청사, 빈해원, 구)군산부윤관사(월명동), 신흥동 57-9가옥, 영화동 12-6 가옥, 월명동 8-19 가옥, 월명동 9-7 가옥, 장미동 29-3 등이 있다. 또 평화동과 월명동, 신창동, 명산동, 금동 등에 산재된 일식 가옥군(群)이 수두룩하게 남아 있다.



특히 평화동 119-1 가옥은 목조 2층 건물로 건물 본체의 벽체는 심벽에 목재 비늘 판벽과 회벽으로 마감했고 건물 본체의 지붕은 일식기와를 얹은 합각지붕을 갖춘 건물이다.



해방이후 이 건물은 특무대에서 사용했었다고 전해지며 이후 응접실 부분을 개조, 십자병원으로 사용했었단다.



또 월명동 3-14 가옥은 월명동 구 법원 앞 동쪽 블록에 위치하며 일제 강점기 당시 천대전정2정목이라는 명칭의 상업, 업무시설과 주거시설이 혼합된 건축물이다.

이곳은 구도심에 남아있는 근대기 주택 중에서 중규모 정도의 가옥으로 서양주택 건축양식이 가미됐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주택 중 하나이다.



김중규 군산시 학예사는 \"일제강점기 때 건물들이 군산에 많이 남아있는 것은 민족 수탈과 아픔의 역사\"라 들고 \"히로쓰가옥(한국제분 관사)을 중심으로 한 인근의 일본식 가옥들과 건물들을 한데 엮어 근대사 건물 보존지역으로 지정, 테마답사코스로 개발하는 문제를 심도있게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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