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마음과 정성을 다하면 반드시 노력의 결과를 저한테 안겨주는 소중한 희망입니다.”
불과 2년여만에 80두의 소를 200두로 키운 젊은 축산인 박정열(29) 씨의 말이다.
이른 아침 6시 박 씨는 서수면 마룡리 소재 서수농공단지 인근에 위치한 축사에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이어 어린 송아지의 발육 상태를 확인하고 소들이 먹을 사료와 볏짚을 나르는 그의 손길은 20년 이상 소를 키운 베테랑 못지않다.
박 씨가 처음 소를 만난 때는 2년 2개월 전 인 2006년 가을. 아버지 박충기(동광금속 대표이사) 씨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하던 박 씨는 당시 소 사업이 전망 좋다는 여론을 따라 본격적으로 소 키우기에 나선다.
평소 동물의 배설물에도 몸서리 칠 정도로 비위가 약했던 박 씨는 처음 접한 소 배설물의 냄새에 곤혹을 치렀다. 박 씨는 3개월 동안 화장지로 코를 막고 소와의 친분을 다지기 시작한다.
소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던 그가 택한 길은 도서관과 발품. 6개월간 호원대 도서관에서 소와 관련된 책은 안 읽은 책이 없을 정도로 소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또 주변 소 사육 농가를 찾아다니며 부족하기만한 소의 특성과 소 사육 시 주의사항을 꼼꼼히 메모하며 점차 소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점차 소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자 소에게 놓아주는 각종 주사에 대한 싶은 욕심이 들더라고요. 수의사를 통해 한 마리 당 주사를 한번 맞히는데 3만~5만원의 돈이 들어가니 열 마리면 50만원의 목돈이 들잖아요. 차라리 그 돈으로 더 좋은 사료를 먹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능수능란하게 소의 목과 엉덩이, 다리 근육에 정확히 주사를 꽂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소의 뼈에 주사를 꽂아 뒷발에 차인 적도 수십 번. 소 묶는 줄에 허벅지가 끼어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크고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지금은 눈빛만으로도 소의 기를 꺾는 전문가가 다 됐다.
모든 소를 사랑하지만 박 씨가 가장이 애착이 가는 소가 있다. 2007년 10월 배에 가스가 차는 고창증으로 암소 한 마리를 세상에 보낸 뒤 다른 소마저 고창증으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수의사조차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답변만 내 놓았을 뿐. 그가 할 수 있었던 건 하루종일 누워 있는 소의 배 마사지가 전부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소는 다음날부터 조금씩 걷기 시작하며 빠른 회복을 보였단다.
“그전에는 소를 돈으로 밖에 보지 않았는데 그 소가 다시 걷기 시작한 것을 보고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얻었다”고 회상한다. 박 씨는 아직까지도 먹이를 줄 때 그 소에게 눈길이 간다고 말한다.
박 씨의 열정과 정성이 담긴 축사에 현재는 200두의 소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데 올해 3~5월에는 60여두의 송아지가 태어나 정부에서 지급하는 송아지 안정제 지원액을 군산에서 가장 많이 받기도 했다.
이런 박 씨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올해 2월 결혼한 아내 이미현(28)씨. 박 씨는 “일부 사람들이 소 키우는 일을 기피하지만 아내는 그 사실을 오히려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백일된 딸 서연이를 키우는 신혼이지만 일에 바쁜 자신을 믿고 묵묵히 따라와 줘 고마울 따름”이라고 밝혔다.
박 씨는 “등급출현률을 높혀 전국에서도 인정받는 고품질의 한우를 키우는게 목표”라며 “아직 갈길은 멀지만 진정한 노력의 대가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소를 통해 배운 만큼 2009년 소띠해는 더 부지런히 일하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기축년의 유래 = 소는 부와 풍요의 근본으로서, 소를 위하고 숭상해야 집안의 번창과 마을의 안녕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소는 십이지 가운데 두 번째 동물로 ‘축(丑)’이라고 하며, 축이 나타내는 시간은 새벽1시부터 3시사이이며 달로는 음력 12월에 해당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