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흥동 군산역 시대 개막이후 1912년 개통된 군산선(군산~익산)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특히 자동차가 1700만대에 달할 정도로 대중화되고 시속 200km이상 주행하는 고속철도가 등장하면서 통근열차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비둘기호와 통일호 등은 사람들에게 추억의 열차로 남게 됐다.
철도의 새로운 변화 속에 경제성이 떨어지는 간이역은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춘 반면 최신식 시설과 대형화로 무장한 역들이 생겨났다.
간이역은 이젠 추억과 애환이 담겨져 있는 곳으로 기억되리라. 이 가운데 현존하는 철도의 역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임피역은 지난 2008년 5월 여객 취급마저 중지돼 그 기능을 완전 상실했다.
기차가 서지 않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임피역은 초라하다 못해 어느새 흉물로 변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텅빈 역으로 변했지만 이렇게 문을 꼭 닫아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곳입니다. 어떻게든 활용돼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이곳에 사는 주민 김모(65)씨는 임피역의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볼 때마다 아쉬움이 가득하고 말한다.
지난 2005년 11월 11일 국가 등록문화재 제208호로 지정되고 당시 농촌지역 소규모 간이역사의 전형적 건축형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는 곳이지만 사실상 지금은 폐허나 다름없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지 오래.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주권이 침탈당한 시절인 1912년 12월 1일 준공된 임피역사는 서울역(1925년준공)보다 13년 앞서 세워진 현존하는 철도의 역사로서 가장 오래됐다.
비둘기호가 운행되던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임피역을 이용했지만 지금은 간간히 사진작가들만이 추억을 더듬으며 이곳에 찾아온다고 한다.
김씨는 “전국의 간이역 중 일부는 폐쇄되지 않고 도서관이나 주민 휴식공간, 사진 전시관 등 문화적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며 “임피역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피역은 암울한 일제시대에 3월 1일 독립만세운동 당시 군산․옥구에 사는 독립지사들이 대한독립독립만세를 부른 역사의 현장. 또한 김제․옥구 등의 너른 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군산으로 실어나르는 강탈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와관련 시는 현재 임피역 건물을 문화유산으로 정하고 보수공사를 위한 실시설계에 들어간 상태. 내년에 개보수를 마치면 이를 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뜻있는 시민들은 “임피역을 개보수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며 “질곡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후세에 알릴 수 있는 사진 전시관 등이 마련되면 좋은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진희완 의원은 “임피역이 지역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해온 만큼 이를 잘 보존하고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관광자원 개발을 통한 소득 창출과 인근 관광지와 연계 효과 등 활용가치가 높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한국철도공사와의 적극적인 협의를 거쳐 활용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화물취급이 중단된 옛 군사역은 군산시가 이 일대에 대한 도시계획도로를 구상, 철도공사 등 유관기관과 건물 해체 등을 협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