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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 전우 선생 학당터·유허비 발견

조선의 마지막 유학자 간재(艮齋) 전우(田愚) 선생의 행적과 학당터를 확인할 수 있는 유허비가 발견돼 새만금의 문화유적지 가치는 물론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10-06-30 09:01:16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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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유학자 간재(艮齋) 전우(田愚) 선생의 행적과 학당터를 확인할 수 있는 유허비가 발견돼 새만금의 문화유적지 가치는 물론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9일 군산문화원(원장 이복웅)은 지난 20일부터 고군산군도를 중심으로 한 도서지방 향토자료조사 중 신시도 대각산 아래 안골에서 전주출생인 조선의 마지막 유학자 간재 전우 선생의 유허비와 학당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간재 선생의 행적에 대해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지만 이번 이를 뒷받침하는 유허비를 발견함으로써 학당의 위치는 물론 명칭이 ‘안양서실과 완고당’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복웅 원장은 “조선의 마지막 거유인 간재 선생의 유허비 발견과 학당터 확인은 군산뿐 아니라 전북의 학맥을 이어 나가고 숭고한 학풍을 세우는데 큰 의미가 있으며, 또한 새만금의 문화유적지로서도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선생(1841-1922)은 전주출생으로 조선말 거유였던 신응조의 권유로 아산의 임헌회를 직접 찾아가 사제의 의를 맺었으며, 1882년(고종 19)선공감감역, 강원도도사, 1894년 사헌부장령, 이듬해에는 순흥부사 중추원찬의에 제수되었으나 이를 거절하고 나가지 않았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소를 올려 을사조약에 서명한 대신들을 죽여야한다고 주장, 1910년 한일합병 이후에는 비분을 참지 못하고 제자들과 상의하여 “마침내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뗏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간다”는 공자의 뜻에 따라 해도로 들어갔다.

지금의 군산(신시도)과 부안(계화도)의 앞바다에 있는 섬을 옮겨 다니면서 강학을 하여 나라는 망하여도 학문을 일으켜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으며, ‘간재집’. ‘간재사고’, ‘추담별집’ 등 6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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