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나라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가업으로 대를 잇고 있는 사례가 그리 흔치 않다.
하지만 전국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7대째 가업을 대물림하며 조상의 혼과 맥을 이어오고 있는 한의원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월명동에 위치한 지산한의원은 200여년이 넘게 ‘명의의 혼’을 이어온 명실상부한 한의학의 명문가.
지산한의원 안재규(58․대한한의사협회 명예회장)원장은 아버지 유업을 잇기 위해 흔히 말하는 잘나가는 서울 생활을 과감히 접고, 지난 2006년 6월 낙향했다.
“우리의 소중한 전통을 지키려는 마음, 그 마음이 늘 자리하고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가업이 이어올 수 있었던 배경인 것 같습니다.”
안 원장은 자신이 가업을 잇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실로 대단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7대째 가업으로 물려받은데다 역대 선조들도 참 의료인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
안 원장의 집안은 1800년초 본래 고향이었던 남원시 대강면에서 7대조부터 4대조까지 한약방을 열며 의생으로 가업을 이어왔다.
안 원장의 집안이 군산으로 이사를 온 건 1945년경. 증조부 안종술 선생(71년 작고)이 당시 군산서장으로 알던 큰 외숙의 권고로 이곳으로 옮겨오면서부터 본격적인 의료활동을 펼치게 된 것.
처음에는 군산의원으로 개원했지만 증조부의 ‘지산’이라는 호를 따서 그 후 명칭을 변경했다.
과거 양방분야 등 의료서비스가 열악한 상황에서 지산한의원은 서민병원으로서 위력을 떨치며 환자들의 고통과 함께 해왔단다.
이 때문에 안 원장을 찾아온 환자들 중에는 “과거 증조부와 선친께서 베푼 따뜻한 마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생존 때 안 원장의 증조부는 “참 의술을 행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의인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단다.
이 같은 가풍의 영향으로 안 원장은 물론 막내 동생 재길(50)씨도 현재 대전에서 ‘지산한의원’이라는 이름으로 가업 잇기에 동참하고 있다.
또한 안 원장의 아들 동선씨도 8대째 가업을 잇기 위해 현재 전공으로 한약학(경희대)을 공부하면서 한의전문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다.
안 원장이 서울에서 잘 나가던 한의원을 접고 군산에 갑작스레 내려오게 된 계기는 아버지(故 안대섭)의 죽음 때문.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오로지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다는 마음과 그 동안 한의원을 믿고 수십년 간 내원하신 연로한 어르신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주저 없이 군산으로 발길을 향했다고 한다.
그래서 안 원장은 늘 가족에게 특히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군산으로 내려가겠다고 한 남편이 원망스럽고 섭섭하기도 하련만 오히려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따라줬기 때문이다.
안 원장은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의 의견도 중요했다”며 “하지만 집사람을 비롯해 가족 모두가 이해해줘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군산에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군산에 내려와 행복한 진료를 펼치고 있다는 안원장. 그는 “군산에서 생활하다보니 어렸을 때 추억이 많이 생각나고 무엇보다 보고 싶었던 친구들도 만나게 돼 역시 고향이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고 말한다.
사실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한 안 원장은 그야말로 한의학계의 거물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서울 대치동에서 30년 동안 한의원을 운영한 그는 지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직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대한한의사협회 명예회장, 세계약침학회 회장, 한국민족문화협의회 공동위원장 등을 맡으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협회 회장 재직 당시 남북 의학 교류 학술대회는 비롯해 해외의료봉사, 가양동 한의사협회회관 건립, 마약법 개정, 약사법 개정, 한의학육성법 재정 등 한의학 제도 개선을 위한 중요한 법적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이와함께 청소년에게 금연침을 시술, 범사회적인 금연운동 분위기를 확산시켜 청소년 금연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제7회 아시아·태평양 금연대회 때에는 금연침을 홍보하고 시술해 한의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기여했다.
또한 제14회 부산아시안게임, 제8회 부산아시아·태평양 장애인경기대회 및 2003대구하계 유니버시아드 등의 행사에 한방진료실을 운영, 세계 각국의 참가자들에게 한의학의 우수성을 알리는 민간외교의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더욱이 안 원장은 미얀마(2004년), 라오스(2004년), 스리랑카(2005년) 등 해외의료봉사단 활동을 지원한 바 있으며, 해외친선한방병원, 국제협력의 및 정부파견의 지원 등을 통한 의료봉사를 실시함으로써 한의학에 대한 긍정적 인식 제고와 국가 이미지 향상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같은 공로 덕에 안 원장은 지난 4월 보건의 날 행사 때 국민훈장 석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안 원장은 선대에서 사용하던 전통 치료법을 고수하고 있다. 종기나 잘 아물지 않은 상처에 잘 듣는 고약도 직접 조제한다.
요즘 젊은 한의사들이 첨단 의료기기를 사용해 한의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확장시키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좀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환자들은 지산한의원에 가면 사랑방처럼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곳은 대부분 수십년 된 단골 손님이 주를 이룬다.
환자의 증세와 처방전이 담겨져 있는 60년이 넘은 진료부는 환자들에 대한 지산한의원만의 배려가 잘 묻어나 있다.
“환자의 고통은 환자 자신이 제일 잘 알죠. 하지만 환자의 그 아픈 마음을 가지고 치료하려고 하다보니 자연히 환자의 증세와 처방전을 꼼꼼히 기록하고 살필 수 밖에 없어요.”
안 원장은 시민의 건강을 제 가족의 건강을 돌보듯이 정성껏 진료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것이 앞으로 자신이 고향에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안 원장은 “참 의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아픔 부분을 치료하고 싶다”며 “증조부와 선친의 정신문화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부족하지만 더욱 노력해 주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