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지형이가 제 노래를 듣고 행복해지고, 엄마가 건강을 되찾아 정상적인 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또 저처럼 어려운 환경에 놓인 친구들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희망을 노래하는 인순이 같은 가수가 되고 싶어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정신장애를 지닌 엄마와 어린 동생 지형(동초·5년)군을 보살피는 소녀가장 신나연(군산여상·2년) 양의 소원이다.
노래 ‘거위의 꿈’을 가장 좋아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늘 밝은 미소로 생활하면서 가수의 꿈을 키워가는 나연 양의 모습에서 그늘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다.
흑산도가 고향이었던 나연 양의 엄마는 스무살이 되던 1990년 친정엄마의 손에 이끌려 울산에 있는 모 사찰에 찾아가 불공을 드렸다.
당시 그곳 주지스님의 아들이었던 나연 양의 아버지를 만났고, 이들은 10살이나 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 눈에 반해 사랑에 빠져버렸다. 드라마처럼 이들은 양가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가난한 부부는 수 십 번의 이사를 되풀이 하다 1990년 군산에 정착해 레스토랑을 오픈, 호황을 누리며 많은 돈을 벌었다.
3년 만에 금의환향했던 가족은 울산에 큰 식당을 개업했고 그렇게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듯 했다. 그러나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개업 다음 날 나연 양의 가족은 비극적인 교통사고를 당했다.
겨우 목숨만 건진 부모는 장애판정을 받아 그동안 벌어 둔 돈을 곶감 빼먹듯 생활비로 사용했고, 곧 바닥이 드러났다.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나연 양이 9살이던 2002년 6월. 나라는 온통 월드컵의 열기로 가득했지만, 나연 양의 집에는 먹구름이 낮게 드리웠다.
어느 날 느닷없이 “이사 간다”는 엄마의 말에 달랑 책가방 하나 둘러매고 피아노책을 품에 안은 채 용달차에 몸을 실은 나연 양이 도착한 곳은 개정면 허허벌판에 자리 잡은 쓰러져 가는 농가였다.
그 때 소녀는 깨달았다. “더 이상 피아노책은 필요 없다”는 것을…
직장에 나가 하루도 버티지 못 하고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아빠와 차츰 정신이 쇠약해져가는 엄마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다툼은 잦았고, 그럴 때마다 온전치 못한 정신과 육체로 며칠 씩 가출하는 아빠로 인해 집에는 먹을 쌀도 없었고, 아랫목은 얼음장이 돼 버렸다.
그나마 동초교 3학년이었던 나연 양은 공부를 제법 잘 해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급우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6학년 때까지만 해도 평균 98점과 만점을 받으며 성적을 유지했지만, 동산중에 진학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선행 학습을 해 온 동급생들을 혼자 공부해 이겨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
신경쇠약으로 습관처럼 가출을 하는 아빠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엄마로 인해 나연 양과 동생 지형 군의 생활은 늘 불안하기만 했다. 점차 나연 양의 학교 성적은 떨어져 중1 때 반 30명중 10등이었던 성적이 중 2년에는 18등, 3년에는 24등으로 미끄럼을 탔다.
이젠 공부에도 재미를 잃은 지 오래였고, 대학은 꿈도 꿀 형편이 못 됐다. 나연 양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군산여상’ 밖에 없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진학한 학교. 그러나 나연 양은 그곳에서 희망을 만나고 꿈을 보게 됐다.
선배 언니들의 밴드연주를 보며 자신 안에 잠자고 있던 끼가 꿈틀거림을 감지하게 된 것. 밴드동아리에 가입해 베이스기타도 배우고, 드럼도 배웠다.
그러나 나연 양이 가장 하고 싶은 건 노래. 노래를 하기 위해서는 실용음악학원에서 보컬트레이닝을 받아야 하는데 기초수급자 생활보조금 80만원으로 생활하는 나연 양으로서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월세 10만원과 수도·전기·전화요금 등을 내고 나면 손에 쥐는 건 50만원 뿐. 지난해 12월, 35만원이나 되는 학원비를 큰 맘 먹고 낸 뒤 남은 돈은 달랑 15만원이었다.
쌀 1포대와 라면 1박스를 사고 동생과 자신의 교통비를 제하고 나니 보일러 기름 값 조차 없어 겨울을 내내 냉골에서 지냈다. 하도 추워 전기장판을 돌렸더니 이번엔 전기요금이 올라가 버스 대신 두발로 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렇게 추운 방에서 동생과 부둥켜안고 잠을 청하고, 김치가 전부인 밥에 라면을 국 삼아 먹고, 떨어진 신발을 친구삼아 걸어도 가슴은 훈훈했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펄펄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는 갈수록 힘에 부친다. 자신의 꿈을 위해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다 보니 괜스레 동생만 더 고생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고 죄스럽기 때문이다. 또 입원한 엄마의 자궁근종 수술비도 큰 부담이다.
“동생이 왕따를 당하고 있더라. 매일 매를 맞고 오더니 어느 날 부턴가는 동생이 아이들을 때리고 왔다. 엄마 아빠도 없이 지내는 지형이가 안쓰럽다”며 눈물을 훔치는 나연 양. 반찬값과 동생 학원비 등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방과 후에 아르바이트를 하노라면 지형 군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누나, 빨리 와. 나 외로워” 이 한 마디가 나연 양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히면 설움이 목구멍까지 차 올라 숨이 막힌다.
나연 양은 “지형이가 잘 견디고 바르게 자라주길 바란다. 내가 실용음악과에 진학해서 원 없이 공부하고, 좋은 가수가 돼서 지형이에게 힘이 되는 누나가 되고 싶다”며 “지형아 사랑해, 우리 힘내자”고 파이팅을 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