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초상
지난 5일 중국 우호도시인 양저우(揚州)시 당서기 일행이 군산시를 방문했다.
양저우시 왕진젠(王進健) 당서기 일행의 이번 군산 방문은 지난 3월 양저우시 상무위원회 부주임일행의 군산 방문에 이은 2번째 대표단 방문이다.
이번 방문은 내년 6월에 있을 양 도시 간 우호도시 체결 10주년 기념행사 추진에 대한 논의와 ‘다음 10년’을 위한 실리적이고 지속적인 교류 협력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뤄졌다.
양저우시와 군산시는 지난 10년 동안 문화, 관광, 체육, 인문, 경제 등의 영역에서 다양한 교류 협력을 추진해 왔다.
이번 양저우시 당서기 일행은 지난 6일 군산문화원과 최치원 선생 관련 문화자원 교류사업 논의를 하는 간담회를 가졌다.
중국 양저우시에는 신라시대 대문호였던 최치원 선생의 기념관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치원(崔致遠)은 뛰어난 인문학 소양과 비범한 인생 경험으로 한중 문화교류사의 대표적인 인물이 됐다. 최치원이 양저우(楊州)시와 맺은 인연은 역사기념관과 우정의 다리로 바뀌어 양국 국민의 마음에 영원히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장쑤(江蘇)성 양저우시에 위치한 최치원기념관의 전시물에 적힌 글귀의 한 부분이다.
최치원기념관은 양저우시 수(隋)나라 양제(煬帝)의 행궁과 당나라 회남(淮南)절도사의 관아가 있던 자리에 건립됐다.
최치원 선생이 880년부터 884년까지 회남절도사의 종사관(비서격)으로서 5년가량 일하던 곳이다.
최치원 선생은 868년 12살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을 와 과거에 급제하고 당나라의 관리로 지내면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 ‘계원필경(桂苑筆耕)’ 등 뛰어난 글로 이름을 날린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문장가이자 지식인이다.
당나라 당시 최대 국제무역항이었던 양저우 시민은 우리나라 사람들 못지않게 한중 문화교류의 상징적인 인물인 최치원 선생을 존경하고 받들고 있다고 한다. 양저우 시민의 애정으로 2007년 최치원기념관의 건립으로 이어졌다.
군산은 신라 출신인 최치원 선생과 어떤 인연이 있나?
군산 신시도는 신라 초기에 섬 주변의 풍성한 청어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라시대의 대학자인 최치원 선생 역시 한때는 신시도에 머물며 학문을 연구했다고 한다.
최치원 선생이 공부했다는 신시도 대각산 정상의 월영대가 있으며 대각산이란 명칭 또한 최치원 선생이 학문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에서 비롯됐다.
또 최치원 선생이 태어났다는 내초도 금도치굴 설화는 군산의 어른들이면 누구나 듣고 자란 이야기다.
최치원의 시호인 문창후와 관련된 문창초등학교, 최치원을 모신 문창서원, 오현당, 도지정 문화재인 자천대 등 최치원과 관련된 많은 문화유산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군산문화원 관계자는 “최치원 선생과 관련해 군산문화원과 양저우기념관이 자료를 모으면 선생의 탄생부터 중국생활, 귀국 후 활동 등 선생의 일생을 완벽히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양저우시 관계자도 “양 시의 진정한 우호관계를 위해서는 민간문화교류가 시작돼야 한다”며 “군산문화원과 양저우의 최치원기념관의 적극적인 교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중국 양저우시의 래군에 따라 최치원 선생 관련 콘텐츠 확보로 다양한 사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군산시의회에서도 최치원 인문관광도시연합 협의회를 활용해 군산에서의 최치원 관련 콘텐츠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최치원 선생과 관련 지자체들이 모여 지난 2015년 고운 최치원 인문관광도시연합 협의회를 구성하고 지자체별로 순회하며 고운 최치원 선생의 정신을 배우고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으나 군산에서는 아직 특별한 사업추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 A씨는 “근대역사밖에 내세울 것이 없는 군산지역에 최치원 선생 관련 소중한 유산이 있는 것을 처음 알았다”며 “군산문화원과 군산시가 나서 소중한 문화를 활용하고 알리는 노력이 더욱 필요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