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그리고 모든 것을 용서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부디 한번만이라도 부모님의 얼굴을 뵙으면 좋겠어요.”
지난 1976년 8월 미국으로 입양된 고은실(39)씨의 첫 번째 한국 방문은 그렇게 ‘부모 찾아 삼만리’ 여행이 됐다.
그동안 미국에서 성장하면서 자신이 태어난 한국을 몇 번이고 찾아오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번번이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어엿한 성인이자 두 자녀의 엄마가 된 지금, 은실씨는 고국과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 대한 그리움에 자신을 떠나보낸 한국에 처음으로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수십년이 지난 세월 속에서도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은실씨의 부모찾기는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가’라는 고민에서 비롯됐다.
교외에 위치한 평범한 미국가정에 입양된 은실씨는 양부모의 밑에서 무난한 생활을 보냈지만 미국인들과 다른 외모 속에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은실씨는 미국에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으면서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에 대해 더욱 궁금증을 갖게 됐고 마침내 용기를 내어 입양된지 35년만에 자신이 태어난 나라, 한국에 가기로 마음 먹었던 것.
지난 1973년 12월(추정)에 태어난 은실씨는 3살 때 명산동에서 처음 발견돼 고아원에 맡겨졌다.
부모가 버린 건지 아니면 잃어버린 건지조차 알 수 없단다. ‘고은실’이라는 이름도 고아원에서 지어준 이름이다.
결국 1976년 8월 미국에 입양되면서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한국을 떠나게 된 것이 그녀가 알고 있는 전부다.
그녀는 한국에 오자마자 고아원에 남은 기록과 입양 당시의 자료를 토대로 친부모 찾기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한국에 머무는 시간은 짧고 부모와 헤어진 시간은 너무나 길었기에 이리저리 도움을 요청해도 들려오는 말은 “잘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별 다른 소득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녀는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은실씨에게서의 친부모란 미움도, 원망도 아닌 그리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은실씨는 “저의 신원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는데다 입양기관에 보관된 서류상의 이름과 생일 등도 부정확해 뿌리 찾기 작업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부모는 못 찾았지만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한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부모님이 행여나 죄책감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며 “언젠가 만나면 꼭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한국을 떠나기 전 은실씨는 “이번 방한에서 이렇다 할 소득을 올리지 못할 지라도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에 있으면서 나와 닮은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했고 그들의 친절함에 깊은 감동을 받아 기분 좋게 미국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