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동안 중국에서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왕시아오치엔(군산대 물류학과 2년) 씨는 한국 제품과 문화에 반해 한국행을 결심했다.
귀하디귀한 딸이 한국으로 유학가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물론 주변인들 모두가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반대를 무릎 쓰고 철두철미한 조사와 준비를 마친 뒤 무작정 한국에 온지 벌써 2년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한글의 기본인 ‘가나다’ 조차 모르고 군산땅을 밝았던 그녀가 이제는 한국말로 농담도 주고받고, 수업에도 적극 참여할 수 있게 돼 성적도 향상되고 있다. 또 일취월장한 한국어를 믿고 지난달 열린 ‘군산대 한국어 말하기대회’에 참가해 영예의 대상을 수상, 그 실력을 공증받았다.
이날 왕시아오치엔 씨는 ‘한국의 음식’이란 제목으로 한국음식의 종류와 만드는 방법, 한국의 맛 등을 섬세하게 표현해 대상의 영광을 안게 된 것.
군산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음식이 입에 맞질 않아 맨밥에 김만 싸서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그였지만 어쩔 수 없이 먹을 수밖에. 김치찌개 같은 음식을 먹고 나면 어김없이 배탈이 나 며칠씩 고생해야만 했다고.
그랬던 그녀가 이젠 김치 없인 밥을 못 먹는 김치마니아가 됐다. 그래서 가끔 고향 산동성에 갈 때도 김치를 싸들고 갈 정도란다. 이런 왕시아오치엔 씨 때문에 가족들 모두 한국음식을 좋아하게 됐다.
“내가 한국에 온 이유는 다른 유학생들과 비슷하다. 한류열풍으로 한국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휴대전화나 컴퓨터, TV, 자동차 같은 한국제품에 홀딱 반하게 돼 한국을 선망했다”고 회상하는 왕시아오치엔 씨.
한국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 등을 보면서 한국어와 한국 스타들이 좋아졌고, 중국에 있는 한국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꾸었고, 결국 군산에서 그 꿈을 이루고 만 것이다. 지금은 유학을 반대했던 지인들이 되레 그녀를 부러워한다.
한국제품을 좋아하게 되면서 수출입에 관심을 갖게 됐고, 결국 전공도 물류학으로 정했다는 왕시아오치엔 씨가 24년이나 함께 살던 부모님 품을 떠나 홀로 외지생활을 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다.
몸이 아프거나 한국어가 부족해서 수업을 이해하기 힘들 때가 특히 힘들었다. 몸이 아플 때면 스스로에게 ‘왕시아오치엔, 넌 아프면 안돼. 빨리 약 먹고 잘 쉬면 얼른 다 날 수 있을 거야\'라고 최면을 걸었다. 그래서인지 신기하게도 중국에서보다 아픈 횟수가 줄었다.
한국어는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1학년 때는 교수님들이 말하는 수업내용의 50% 정도 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요즘은 토론 등 그룹으로 하는 과제가 많은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어로 이해하기 힘든 주제는 중국 사이트에서 찾아보면서 혼자서 열심히 공부했다.
생활비를 보태고 한국어를 더 연습하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지만 마땅히 받아주는 곳도 없고 시간도 모자라 할 수 없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
다행히 외국인에 대한 교내장학금 제도도 있고, 등록금은 부모님이 해결해주셔서 부담도 덜한 편이다. 그렇지만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짠순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왕시아오치엔 씨는 “군산은 매우 안전하고 호의적인 도시라 맘에 든다. 밤늦게 혼자 돌아다녀도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 좋다. 맛있는 음식이 많은 고장이어서 더 좋다”고 칭찬했다.
또 “군산사람들의 매너도 인상 깊다. 공공 화장실도 깨끗하고,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음식을 먹고 난 뒤 스스로 치우고 간다. 화장실이나 버스를 기다리면서 순서대로 일렬로 서있는 것도 멋지다”고 덧붙였다.
적지 않은 시간동안 한국에서 살아온 왕시아오치엔 씨는 군산이 자신의 두 번째 고향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그는 “졸업하고 기회가 된다면 전공을 살려 한국의 무역회사나 물류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 요즘 한국에서 취직하려고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 “만약에 중국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군산에서의 시간을 잊지 못할 만큼 한국을 사랑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