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1주년을 맞아 군산의 독립운동사를 다시 돌아본다. 1919년 3·5 만세운동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군산 곳곳에서 독립을 외치고 항일투쟁에 나섰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국가보훈부 공훈자료와 독립유공자 공훈록, 군산시 박물관관리과 자료 등을 바탕으로 되짚었다.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되지 못했던 이들의 발자취를 통해 ‘수탈의 항구’였던 군산이 동시에 ‘저항의 도시’였음을 되새겨본다.<편집자 주>

광복 81주년을 맞아 군산 근현대사를 되돌아보면 ‘수탈의 도시’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또 하나의 역사가 있다.
일제강점기 호남평야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던 주요 항구였던 군산에서 일제에 맞서 독립을 외쳤던 사람들의 역사다.
특히, 1919년 3월 5일 군산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지역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영명학교와 구암교회 등을 중심으로 교사와 학생, 기독교인 등이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했고 이후 지역 주민들이 합류하면서 군산 곳곳으로 독립의 함성이 번졌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자료와 독립유공자 공훈록 등 자료를 따라가 보면, 당시 군산의 독립운동은 몇몇 인물만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학교와 교회, 병원 등 지역사회 여러 공간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거사에 참여했고 주도자들이 체포된 뒤에도 시위는 이어졌다.
◇독립선언서를 품고 군산으로 돌아온 청년
군산 3·5 만세운동 출발점에는 김병수가 있었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이었던 김병수는 서울에서 이갑성을 만나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뒤 이를 군산으로 가져왔다. 이후 영명학교 교사들을 비롯한 지역 인사들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군산에서 만세운동을 준비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의 움직임이 군산으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학교에서 독립을 준비한 교사들
김병수가 가져온 독립선언서는 영명학교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박연세·이두열·김수영 등 영명학교 교사들은 독립선언서를 바탕으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태극기와 선언문 등을 준비했다.
특히, 이두열은 군산 3·5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적극 참여한 인물이다. 일제에 체포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며 이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교사라는 신분 때문에 일제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오히려 학생들이 독립의 뜻을 공유하고 거리로 나서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석주 역시 영명학교와 구암교회 부속 여학교에서 활동하며 만세운동 계획에 참여했다. 체포된 뒤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당시 독립운동이 남성 중심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닌 학교와 여성교육 현장에서도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주도자들이 체포돼도 멈추지 않은 만세운동
군산 만세운동은 주요 인물들이 체포돼도 끝나지 않았다.
김윤실은 주도자들이 체포된 뒤 긴급회의를 열고 시위를 이어가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이미 일제 탄압이 시작된 상황에서도 독립만세운동 불씨를 이어갔다.
학교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특정 인물 체포로 사라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이어졌다는 점에서 군산 3·5 만세운동 확산 과정을 보여준다.
◇교회와 병원에서도 독립의 뜻을 모았다
독립운동의 움직임은 학교에만 머물지 않았다.
양성도는 개정면 구암리 예수교병원 사무원으로 활동하면서 만세운동 준비에 참여했고, 이재근 역시 지역에서 군중을 규합해 영명학교 학생들과 함께 시위에 나섰다.
지역 기독교인인 김성은·유희순 등도 만세운동 계획에 참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동참을 권유한 것으로 공훈자료에 기록돼 있다.
이는 군산 3·5 만세운동이 학교와 교회, 병원 등 당시 지역사회를 구성하던 공간들을 통해 조직되고 확산됐음을 보여준다.
◇거리로 나온 학생과 시민들
3월 5일이 되자 영명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군중이 거리로 나섰다.
개정면 일대에서 시작된 시위에는 주민들이 합류했고 시위대는 군산 시내로 이동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이재근 등은 군중을 규합해 시위에 참여했으며, 정문선과 같은 노동자들도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를 외치는 등 거리의 독립운동에 동참했다.
학교에서 준비된 독립의 뜻이 교회와 병원을 거쳐 결국 시민들의 거리 시위로 이어진 것이다.
◇만세운동 이후에도 이어진 항일투쟁
군산지역 독립운동은 3월 5일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군산 출신 이인식은 1919년 당시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 학생으로 3·1운동에 참여했다. 3월 5일 서울역광장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뒤에는 전 재산을 처분해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8,000원의 독립자금을 전달하고 군자금 모집원으로 활동했다.
군산 출신 청년이 서울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이후 해외에서 임시정부를 지원한 사례는 당시 독립운동이 지역에만 머물지 않고 전국과 해외로 연결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김수남 역시 만세운동 이후에도 항일활동을 이어갔다. 격문을 뿌리는 등 일제에 저항했고 군산공립보통학교 방화를 계획·실행하는 등 지속적인 항일투쟁을 벌였다.
이런 활동으로 중형을 선고받았으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3·5 만세운동이 군산지역에서 단발적인 시위로 끝나지 않고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항일운동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후 군산에서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에 맞서 농민들의 저항도 이어졌다.
1927년 옥구 서수면에서는 일본인 지주가 운영하던 이엽사 농장의 과도한 소작료와 수탈에 맞서 농민들이 집단으로 저항했다. 당시 농민들은 소작료 인하 등을 요구하며 서수농민조합을 중심으로 저항했고, 일제가 이를 탄압하자 농민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맞섰다.
옥구농민항쟁은 일제의 식민지 농업수탈에 맞선 지역 농민들의 대표적인 항일 저항운동으로 평가된다.
1919년 학생과 교사, 종교인과 시민들이 거리에서 독립을 외쳤다면 1927년에는 농민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일제 수탈에 맞섰다. 형태는 달랐지만 일제의 식민지배에 저항했다는 점에서 군산 항일운동의 또 다른 한 장면이다.
◇군산 독립운동을 해외에 알린 린튼
당시 영명학교 교장이었던 윌리엄 린튼도 군산 독립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린튼은 군산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을 지원했고 일제 탄압 상황을 알리는 데 힘썼다. 이후 미국에서도 일제 식민통치와 한국 독립운동을 알리는 활동을 이어갔다.
군산에서 시작된 독립의 목소리를 지역 밖으로 전달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수탈의 도시였지만, 동시에 저항의 도시였다
일제강점기 군산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주요 거점이었다.
군산항을 중심으로 일본인 거류지가 확대됐고 식민지 수탈을 상징하는 시설들이 곳곳에 들어섰다.
하지만 군산의 역사를 수탈의 역사만으로 기억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탈이 집중된 바로 그곳에서 일제에 맞선 저항이 시작됐고 교사와 학생, 종교인, 병원 관계자,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을 외쳤다.
1919년 3월 5일 군산에서 울려 퍼진 만세의 함성은 그렇게 여러 사람의 뜻이 모여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저항의 역사는 만세운동 이후에도 이어졌다. 개인의 항일투쟁에서 농민들의 집단적인 저항에 이르기까지 군산에서는 일제 식민지배와 수탈에 맞서는 움직임이 계속됐다.
광복 81년.
오늘날 군산 곳곳에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제는 건물 외형이나 관광자원이라는 의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 공간에서 누가 살았고, 무엇을 빼앗겼으며, 또 누가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어떻게 저항했는지를 함께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군산의 광복은 1945년 8월 15일 하루에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독립을 외쳤던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함과 뼈를 깎는 고통, 인고의 시간이 있었고
1919년 군산 거리에서 울려 퍼진 만세 함성 역시 그 긴 역사 속에 자리하고 있다.
광복절 즈음에 우리가 다시 군산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 국가보훈부 공훈자료에 등재된 군산지역 독립운동가 ▲국외항일투쟁 강문주, 강한년, 고종근, 구호림, 김영현, 심재순, 양일동, 이수현, 조수완, 채세윤, 최태경. ▲ 국내항일투쟁 이순길, 이정순, 이준호, 이태로, 전봉균, 전정풍, 조남권, 최공훈, 최봉한, 한칠석, 홍순완. ▲옥구농민항쟁 김재풍, 김행규, 문일만, 오남용, 이광순, 이기열, 이성순, 이성춘, 이용덕, 이정춘, 이진섭, 이효남, 이휴춘, 장채성, 최은엽, 한기석. ▲3·1만세운동 김병수, 박연세, 이두열, 김수영, 고민용, 고석주, 권재길, 김성은, 김수남, 김윤실, 김홍렬, 신관순, 양기준, 양성도, 이경수, 이병관, 이인식, 이재근, 임종우, 진장권, 정문선, 홍천경, 유희순. ※ 자료=군산시 제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