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넘게 친 형제보다 더 가까이 매일 만나며 지냈는데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니 사는 게 재미없어 죽겠어. 하루가 너무 길어”
월명동 고지대 공원화 사업으로 50년 가까이 살던 마을을 떠난 정순(73·오룡동) 할머니의 푸념이다.
20살에 시집와 월명동에 신혼집을 마련한 할머니는 이곳에서 3남2녀를 낳아 기르고 결혼시켰다. 이 외에도 이 마을에는 정 할머니처럼 자손대대로 살아가는 가족들이 많았다.
옹기종기 이마를 맞댄 슬레이트 지붕들과 다닥다닥 붙은 벽들, 코 고는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곳에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피붙이처럼 지내던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 이주하기 시작해 현재 서너채만이 남았다. 집들은 모두 헐리고 집터는 속살을 드러내며 흙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짧게는 25년 길게는 50년 넘는 세월을 한 곳에 뿌리 내려 살다 보니 옆집의 숟가락이 몇이고, 건넛집 부부가 간밤에 왜 싸웠는지, 앞집 자식 혼인 날짜가 며칠 남았는지, 뒷집 제삿날이 언제인지 죄다 꿰고 지냈다.
시어머니께 꾸지람이라도 들으면 이웃집 아낙들이 모여 위로해줬다. 저녁 찬거리가 마땅치 않을 때면 이집 저집서 반찬 한 가지씩 들고 와 금세 수라상은 저리 가라였다고.
장거리 출타라도 할라치면 대신 아이들을 밥 먹여 학교도 보내고, 택배물이나 우편물을 대신 받아주고, 느닷없이 소나기라도 내리면 마당에 걸린 빨래도 걷어주곤 했다.
병에 걸려 몸 저 누우면 이웃들이 아침저녁으로 들락거리며 연탄불도 갈아주고 죽도 쒀 먹여줘 멀리 있는 형제나 자식들보다 백배 나았다고 한다.
동네 어귀 유휴지는 마을 주민들의 반찬가게나 다름 아니었다. 척박한 땅의 돌을 골라내고 호미로 갈아 상추며 부추, 고추, 배추 할 것 없이 채소란 채소의 씨앗을 뿌려 길렀다.
봄이면 텃밭에서 뜯은 상추에 된장 한 숟갈 넣어 밥을 비벼 먹고, 한 여름이면 방금 딴 애호박을 넣고 부침을 부치고 호박잎은 쪄서 쌈을 해먹었다.
가을이면 단풍구경도 함께 다니고 김장담그기도 서로 품앗이 했다. 겨울이면 김장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부침개를 부쳐 동네잔치를 벌이곤 했단다.
정 할머니와 친자매처럼 지낸 이순남(나운동) 할머니는 “다 옛말이지. 싸우기도 무던히 싸웠는데 그게 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인거야. 미운정고운정 들대로 다 들어서 이제 뿔뿔이 흩어지니까 보고 싶고 마음이 허전해 죽겠다”면서 “다리를 다쳐 꼼짝 못해도 아파트에서는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 없어 힘들다”고 말했다.
이 마을 막내였던 박종만(삼학동)씨는 “새 동네로 이사하니까 모든 게 낯설고 새로 사귀는 사람들과는 서먹해서 이야기도 나누기 힘들다”며 “형님아우하며 지내던 분들이 눈에 밟힌다”고 말했다.
고향이란 무엇일까. 고향은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땅과 대기인 동시에 영혼의 집이기도 하다. 이제 영혼의 집이 공원이 되는 이곳. 그나마 공원에 와서 잠시나마 사라진 존재들을 기억하고 추억을 만나는 장소가 되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