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라고 안 싸웠겠어요. 서로 문화가 얼마나 다른데요. 서로를 이해하려고 꾸준히 노력해야죠. 요즘도 가끔씩 티격태격해요. 부부간에는 싸움을 가끔씩 해야 상대방의 생각을 알 수 있어요.”
아르세니아(43) 씨의 행복비결이다.
두 딸 은혜(17), 지혜(13)를 둔 아르세니아씨의 하루는 오전 5시 30분부터 시작된다. 일어나자마자 아침밥을 짓는다. 그리고는 밭으로 나가 채소를 캐고, 바다에 나가 꽃게를 잡고, 잡아온 꽃게를 내다팔면 오전이 훌쩍 지난다.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다시 배를 타고 나가 꽃게를 잡고, 꽃게를 손질한 뒤 또다시 저녁식사준비, 집안일을 대충하고 나면 시계바늘은 오후 11시를 가리킨다.
도시인들보다 3배 이상 일을 하는 그녀의 고단한 삶. 한국여성들도 마다할 일을 아르세니아 씨는 최선을 다해 감당하고 있어 신시도 주민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처음엔 엄청 울었다.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르고. 필리핀은 남자가 집안일을 도와주는데 여긴 다 여자가 해야 하니까. 시누들이 있어도 며느리가 그냥 다 해야 하니까. 그게 제일 힘들더라”고 말하는 아르세니아씨.
3남3녀의 장손 며느리의 자리는 힘들었고, 생활고도 심했다고 한다.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와 회를 보고 기겁을 하던 필리핀 새댁은 어느덧 능숙하게 물고기를 잡고, 직접 회를 뜨는 횟집의 어엿한 안주인이 됐다.
처음 섬 생활을 시작할 때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섬이 아닌 도시에서는 하루도 못 살 것 같다고 말하는 아르세니아 씨, 이제 완전한 섬사람이 다 됐다.
아르세니아 씨의 회 뜨는 솜씨는 보통이 아니다. 바쁠 때는 하루에 15kg이 넘는 회를 혼자 뜬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경험 속에서 혼자 익힌 그녀의 솜씨는 단체 손님이 있는 날 특히 빛을 발한다.
하지만 늘 이렇게 많은 양의 회를 준비하다 보니, 아르세니아 씨의 어깨 통증은 가실 날이 없다. 그래도 이런 통증쯤이야 아이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고.
딸 아이들이 어릴 적 부부 둘이서 어장을 관리하느라 새벽 2~3시에 나가 오전 11시쯤 들어오면 애들은 미리 챙겨놓은 밥을 알아서 먹곤 했다고 한다.
네 살 짜리 첫째딸에게 두 살 짜리 둘째딸을 맡긴채 보살펴주지 못했을 때가 가장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 두 딸은 씩씩한 여고생과 중학생으로 어엿하게 성장해 부부에게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듯 살림도 불었다. 단층집은 2층 민박집으로 바뀌었고, 작은 배는 22인승 낚시어선으로, 아이들 교육을 위해 군산시내에 아파트 한 채도 장만했다.
남편 박씨는 이장을 지내며 전망대도 만들고 마을회관도 새로 지어 표창장도 숱하게 받았고, 부인은 초등학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영화에도 출연하는가 하면, 군산지역 필리핀 여성들의 맏언니 역할까지 도맡아 해오고 있다.
한국인 남편에게 매 맞고 울먹이며 전화 하는 후배들, 시부모에게 욕을 듣고 설움을 토해내는 후배들을 도와 줄 때가 가장 보람되다는 아르세니아 씨.
사실 그녀는 필리핀에서 나름 ‘엄친딸’이었다. 바기오 만까얀에서 알아주는 집안이었다. 11남매중 7곱째인 그녀를 포함한 모든 남매가 대학을 나왔고, 지역 군수나 시의원도 있다.
이런 그녀의 집안에서 극심히 결혼을 반대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2년여간 편지로 사랑을 키워 부부의 연을 맺었다.
아르세니아씨의 어릴 적 꿈은 교사. 그러나 한국의 서쪽 섬으로 시집오면서 그녀의 꿈은 접어야만 했다.
그러다 일주일에 한 번 방과 후 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정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다시 살아났다. 비록 정 교사는 아닐지라도 마음만큼은 열의에 가득 차 정성껏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국경도 나이차도 극복한 이 부부는 신앙 하나로 똘똘 뭉쳐 이제 서로 거울처럼 닮았다. 여느 부부처럼 티격태격하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은 깊다.
“자식들 공부시키고 결혼 시킨 뒤 그동안 고생만 한 아내의 손을 붙들고 전국 방방곡곡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남편 박씨의 바람에서 부부애가 물씬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