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호 (사)서수면사람들 이사장
ㅣ제9회 가와사키 농장의 깃발ㅣ
1909년 봄, 가와사키 농장사무소 앞의 깃발이 아침 바람에 펄럭였다.
처음 농장이 들어설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 깃발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논에 꽂힌 말뚝도, 사무소에 드나드는 일본인도 한철 지나면 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깃발은 해마다 같은 자리에 올랐고, 농장에 딸린 논은 조금씩 넓어졌다.
옥례와 기석이 잃은 아래 논에도 모가 푸르게 자랐다. 달라진 것은 땅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처지였다. 이제 그 논에 들어가려면 농장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가을이면 수확의 큰 몫을 소작료로 내야 했다.
농장은 논만 차지한 것이 아니었다. 들판을 오가는 길과 물길에도 농장의 눈이 따라붙었다.
어느 집이 물을 먼저 댔는지, 누가 지시한 날짜보다 늦게 모를 냈는지, 누가 농장 말을 거슬렀는지가 장부에 적혔다.
농장사무소의 장부에는 논마다 번호가 있었고 사람마다 내야 할 몫이 있었다.
그러나 밤새 물꼬를 지키다 논두렁에서 잠든 사람의 피로는 어느 칸에도 적히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농장이 넓어지는 것을 지도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제까지 이웃과 품을 나누던 논에 낯선 관리인이 서고, 농장 표식이 박힌 말뚝이 하나둘 늘어났다.
말뚝 너머의 논까지 같은 날 모를 내고 같은 날 벼를 베었다. 들판이 넓은 한 장의 장부처럼 변해갔다.
기석이 새벽부터 지게를 졌다.
“오늘도 농장 가?”
“오라잖여.”
“누가?”
“깃발이.”
옥례가 픽 웃었다.
“깃발이 말도 혀?”
“사람보다 말이 많어. 올라가 있으면 나오라는 뜻이고, 내려가 있으면 눈치 보라는 뜻이여.”
“그럼 바람 없는 날은?”
“입 다물라는 뜻이겄지.”
말은 농담이었지만 두 사람은 오래 웃지 못했다. 농장사무소에서 사람을 부르면 까닭을 묻기 어려웠다.
모내는 때와 김매는 날이 정해졌고, 종자와 거름을 쓰는 법까지 지시가 내려왔다.
물꼬를 언제 열고 닫을지도 농장 관리인이 살폈다. 농민은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지었지만, 그 손이 움직일 때와 멈출 때를 정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한번은 기석이 병든 어머니를 돌보느라 농장에 늦게 나갔다. 관리인은 사정을 듣기보다 장부부터 펼쳤다.
“정한 시각을 지켜야 하오.”
“사람이 아픈디 시각이 뭔 소용이오.”
“규칙은 모두에게 같소.”
기석은 입술을 깨물었다. 모두에게 같다는 규칙이 누구에게는 명령이었고 누구에게는 벌이었다.
농장주는 늦어도 주인이었지만 소작인은 잠깐 늦어도 게으른 사람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기석에게 옥례가 물었다.
“뭐라고 안 혔어?”
“혀서 뭐 혀.”
“당신은 꼭 할 말 있을 때만 말을 안 허더라.”
“당신이 내 몫까지 다 허잖여.”
옥례가 호미를 들자 기석은 얼른 마당 밖으로 달아났다. 담장 너머에서 춘매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저 집은 농장보다 옥례가 더 무섭겄네.”
잠시 웃음이 났다. 웃을 수 있을 때 웃는 것도 사람들이 버티는 방법이었다.
그 무렵 농장 안에 작은 신사를 세운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 날 일본인 인부들이 농장사무소 가까운 곳으로 나무상자 몇 개를 옮겼다.
상자는 크지 않았지만 다루는 모습은 쌀가마보다 조심스러웠다.
옥례가 논두렁에 서서 물었다.
“저게 뭐여?”
기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흙이래.”
“흙?”
“가와사키 고향에서 가져온 흙.”
“일본에는 흙도 없대?”
기석이 피식 웃었다.
“그게 아니라 니가타라는 데 흙이래. 자기 고향.”
상자가 열리자 회갈색 흙이 천천히 쏟아졌다. 서수의 붉은 흙과는 빛이 달랐다.
바다를 건너온 흙 앞에 향이 피워졌고, 농장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는 제물을 차렸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았다.
옥례는 웃지 않았다.
“이상한 사람들이네.”
“뭐가.”
“자기 고향 흙은 저렇게 귀하면서.”
옥례가 멀리 논을 가리켰다.
“남의 고향 땅은 왜 그렇게 쉽게 가지려 헌대?”
기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 쉬운 질문이라서 오히려 대답하기 어려웠다.
가와사키는 일본의 대표적인 쌀 고장 니가타 출신이었다.
1905년 서수에 농장을 열면서 일본인 사무원과 농업기술자들을 데려왔고, 네 해 뒤에는 고향의 흙까지 옮겨왔다.
그 흙을 모신 농장 안의 신사를 사람들은 서수신사라 불렀다.
봄과 가을이면 그곳에서 제전이 열렸다. 소작조합 간부들도 불려갔다.
참배가 끝나면 모내기와 김매기, 수확에 관한 지시가 이어졌다. 풍년을 바라는 마음과 농장의 규율이 한자리에 놓인 셈이었다.
제전이 있는 날이면 신사 앞은 깨끗이 쓸렸다. 농장 사람들은 흰 종이를 달고 술과 곡식을 올렸다.
정작 그 곡식을 키운 소작인들은 뒤쪽에 서서 앞사람의 어깨만 바라보았다.
누구는 그저 농사가 잘되기를 빌었고, 누구는 절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했다. 같은 자리에 서 있어도 마음은 서로 달랐다.
“일 쉬는 날 생기면 좋은 거 아녀?”
만돌이 말하자 춘매가 코웃음을 쳤다.
“남의 신 앞에 절하고 쉬는 게 뭐가 좋다는 겨.”
“조용히 혀. 누가 듣겄어.”
“내 입도 농장 것이여?”
“니 입은 원래 니 것이 아니여. 동네 사람들 것이제.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응께.”
사람들이 웃었다. 춘매도 만돌의 등을 한 대 치며 웃었다.
그러나 사무소 쪽에서 관리인이 나타나자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
사람들은 괜히 논을 보거나 호미 자루를 고쳐 쥐었다. 말은 목구멍 안으로 들어갔고, 깃발만 바람 속에서 소리를 냈다.
그해 여름, 옥례에게 딸이 태어났다.
기석이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고 물었다.
“이름 뭐라고 지을 겨?”
“복순.”
“왜?”
“복 많이 받으라고.”
기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 흔한 거 아녀? 좀 멋있는 걸로 하지.”
옥례가 남편을 노려보았다.
“니 이름은 얼마나 멋있는디.”
“내 이름이 뭐 어때서.”
“기석. 길가에 돌멩이 하나 주워도 기석이겠다.”
기석이 딸을 안은 채 돌아섰다.
“가자. 니 엄니 말이 너무 험하다.”
옥례가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다.
아이 이름을 정하고도 두 사람은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복이 많으라고 지은 이름이었지만, 아이에게 물려줄 논은 없었다.
기석은 천장을 바라보다 말했다.
“복순이는 우리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겄지?”
옥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세상이 알아서 나아지겄어?”
“그럼?”
“우리가 뭐라도 남겨야제. 볍씨든 말이든.”
기석은 잠든 아이의 주먹을 보았다.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이 단단히 오므라져 있었다.
복순은 몸집은 작았지만 울음소리는 컸다. 그날 밤 아이가 쉬지 않고 울자 기석이 새벽녘에 중얼거렸다.
“이름을 바꿔야겄어.”
“뭐라고.”
“울순이.”
베개가 날아왔다.
아침이 밝자 옥례는 갓난아이를 안고 마당에 나왔다. 저 멀리 농장의 깃발과 신사의 지붕이 보였다. 그 안에는 니가타에서 건너온 흙이 있었다.
옥례는 맨발 아래의 서수 흙을 내려다보았다. 복순의 작은 손이 허공을 힘껏 움켜쥐었다.
“여보.”
“왜.”
“저 사람들 고향 흙도 귀하고, 우리 고향 흙도 귀한 거 맞제?”
“당연하지.”
옥례는 아이를 더 깊이 품에 안았다.
언젠가 이 아이에게 가르쳐야 했다. 자기 고향의 흙을 사랑하는 것과 남의 고향 땅을 빼앗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들판 위에서는 가와사키 농장의 깃발이 펄럭였다.
그러나 옥례의 품에서는 그 깃발 아래서 살아갈 새로운 이름 하나가 막 눈을 뜨고 있었다.
― 다음 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