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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리모델링하자’

내항 및 원도심 발전전략은(1) -생성,영광,퇴락의 상징 공간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8-09-08 08:52:59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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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9년 개항이후 행정․법조타운 등 종합행정타운으로 우뚝 최고의 번화가, 상업중심지로서 약 100년간 전성시대 열어 올해로 개항 109년. 일제 강점기 호남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수탈하는 항구로 개발돼 반짝 영화(榮華)를 누렸던 곳.   군산의 영화는 곧 수탈의 증거였으되, 흔적들은 정비되지 못한 채 고스란히 남았다. 그 퇴락함이 매력이 되는 모양이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와 70․80년대 등을 배경으로 한 각종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을 받아왔다.   물론 개항이전 군산에도 항구 기능이 존재했었다. 당시 군산진과 군산창을 중심으로 한 중앙로, 영화동, 월명동 등으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원도심지역이 중심지였다.   1899년 5월1일 경남 마산항과 함경도 성진항과 함께 대한제국에 의해 개항된 군산항은 일제가 19세기 말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조계지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기에 이른다.   특히 강점기시대의 영화동 거리는 일본식 2층 기와집들이 줄지어 있었을 뿐 아니라 군산부(오늘날 시청), 법원 및 검찰, 경찰서 등에 이르기까지 갖춘 최고의 번화가요 중심지였단다.   게다가 유흥가와 상업중심지로서 그 위상은 대단했다 한다.   그러나 현실은 낙후의 상징물이 된 지 오래다. 살아있는 근대역사박물인 내항과 원도심지역의 개발전략 마련과 함께 관광지로 새롭게 가꾸는 방안은 어떻게 만들어 낼까.    본보는 멋의 거리, 영화와 테마의 거리, 맛의 거리, 예술의 거리, 새로운 도전 등이란 주제로 집중조명해보기로 한다.   ◇ 일제 수탈의 흔적과 유흥가 =일제 강점기의 흔적은 월명동과 영화동, 해망동 등 일대에 진하게 남아있다. 개항 100주년을 맞아 만든 백년광장 옆의 낡은 건물은 옛 조선은행이다.   조선은행 건물은 참담 그 자체다. 은행이었다가, 카바레였다가, 노래방이었다가 지금은 버려진 채 남아있다. 건물 내부는 철거공사를 하다 만 것처럼 자재들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고, 주변은 금방이라도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흉물로 변한지 오래다. 금방이라도 붕괴될 것 같은 건물들을 지나면 붉은 벽돌로 지은 옛 군산조계 건물이 나온다.   내항 주변엔 일본인이 버리고 간 적산가옥이 아직도 많다. 유일한 일본식 사찰인 금광동 동국사(등록문화재 64호)와 동국사 근처의 신흥동 히로쓰 가옥은 군산 포목상이던 히로쓰가 지은 전형적인 일식 주택이다. 해망굴은 1926년 시내와 내항을 연결하기 위해 뚫은 131m짜리 터널 등의 근대건축물들이 수두룩하다.   ◇ ‘작은 일본’ 군산 =1899년 각국의 조계지역이 된 후 가장 큰 변화를 경험했던 군산 원도심지역. 이곳에는 일본식 제국주의의 거점지역이었던 혼마치(本町通:오늘날의 해망로)와 전주통 등이란 도로가 들어섰고 주변에 일본식 목조기와집들이 즐비했다.   이후 군산의 경제적 번영으로 도시가 확장되지만 초기 각국 조계지역은 해방이 되어 일본인들이 이 땅에서 떠나는 순간까지 경제, 정치, 행정의 중심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식민지시대 각국 조계지역은 현재의 영화동, 금동, 신흥동 지역이지만 여기에다 대명동, 미원동, 명산동 등도 이들 지역과 마찬가지로 원도심의 범주에 속하는 지역이다. 여기에는 장기 18은행 군산지점과 옛 군산세관, 군산부윤의 관사와 일본인 가옥 밀집구역 등이 즐비해 근대화의 물결로 비껴있던 군산은 일제식민지 모습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도시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역사의 시계바늘이 멈춰선 듯 현대식 건물들과 일본식 가옥 때문에 많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관심을 끌고 있다. ◇ 종합행정타운시대와 그 이후 =70년대 들어서서야 일본과 미국의 간판을 어느 정도로 걷어낼 수 있었던 영화동 등 원도심지역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90년대 중후반까지 군산시청과 법조타운, 경찰서, 교육청 등이 인근에 위치한 명실상부한 종합행정타운이었다.   이들 지역과 관공서 등을 상대로 한 식당들이 하나 둘씩 들어서면서부터 밀집지역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패션거리와 먹거리, 예술의 중심지로서 위상을 확고히 했다.   해방과 함께 일본인들이 떠난 후 일본인 소유의 상점과 집들은 적산가옥이라는 이름으로 미군정청 행정관들에 의해 관장됐고 주변지역이 미군들의 유흥지역으로 변모, 개복동 및 대명동 유흥가로 최근까지 존재했었다.   특히 월명동은 지난 2월 월명, 신창, 중앙1가, 영화, 장미동 등 월명동과 선양동(선양, 둔율, 창성, 명산, 송창, 개복동)지역이 통합된 대표적인 원도심지역이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군산시청 등이 대거 조촌동지역 등으로 하나둘씩 이전하면서 도심공동화현상이 심화돼 오늘의 쇠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창호 월명동장은 \"원도심의 대표지역 중 하나인 월명동 주변지역은 대표적인 원도심권인 만큼 자체적으로 홍보도우미를 적극 운영, 지역주민들과 함께 지역경제활성화에 온 힘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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