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쟁상대는 동네 가구점이 아닙니다. 인터넷 쇼핑몰을 비롯한 전국의 가구점입니다. 최고의 제품을 가장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 이것이 원칙입니다.” 연 매출 수 십 억 원을 달성하고 있는 김선옥(45) 삼익가구 대표의 비결이다. 1968년 정읍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김 대표는 윗 형제들의 성장을 바라보며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계획을 세우게 됐다. 그래서 항상 5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목표로 설정하고 치밀한 계획 하에 실천을 거듭하며 하나 둘 그 목표를 실현해나가는 즐거움을 깨달았다고. 막내둥이로 귀엽게 자랐을 법도 한데 날로 기력이 약해지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법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억척 여고생은 정읍여상을 졸업한 뒤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3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녀는 회사 내에서 세일즈를 가장 잘 하는 직원으로 인정받았고, 그 무렵 자신만의 일을 하고 싶어 직장을 그만 둔 그녀는 자그마한 옷가게를 오픈해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그녀가 아니었다. 3년 뒤엔 다시 미용실로 업종을 변경했다. 하지만 그 무렵 김 대표는 결혼을 앞두고 미용실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뒤 1994년 군산에 둥지를 틀었다. 한창 일에 빠져 지내던 그녀가 집에서 살림만 하기엔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고 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군산에서 하루하루를 그냥 보낸다는 건 김 대표에겐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고. 김 대표는 “난 일을 정말 사랑한다. 그래서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돈을 좇아 일 했다면 즐겁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던 그녀가 관심을 갖게 된 게 화장품 방문판매. 평소 세일즈에 자신 있던 그녀는 한달음에 회사를 찾아가 등록하고 생활정보지에 판매사원을 모집한 뒤 팀을 결성, 첫 달부터 매출액 2000만원을 달성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자신의 세일즈 노하우를 팀원들에게 전수하고 리더십을 발휘해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국장의 자리에 올랐고 이후 몇 해 동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판매액을 고수했다. 지금도 그때 그 멤버들과는 친형제 이상의 우애를 다지며 지내고 있다. 이처럼 한창 잘 나갈 즈음, 시아버지의 부름을 받은 김 대표에게 인생 최대의 숙제가 주어졌다. 시아버지가 운영하던 가구점이 경영 위기에 놓였던 것. 평소 며느리인 김 대표의 능력을 눈 여겨봤던 시아버지는 그녀에게 자신을 대신해 가구점을 운영함으로써 가업을 이어줄 것을 당부했다. 무엇이든 손을 대면 끝을 보았던 그녀는 가구점의 당시 상황보다 미래를 내다보고 운영에 뛰어 들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세일즈라면 자신만만했던 그녀도 한달 만에 이를 포기하겠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이에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무거운 어깨를 안타까워하면서도 ‘능력이 있으니 일으켜 세워달라’고 다시 부탁했고, 김 대표는 시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에 이를 악물었다. 그때가 바로 13년 전인 2000년 2월. 그날 이후로 그녀는 낮밤을 가리지 않았다. 전국 가구공장과 가구점을 둘러보며 어떻게 해야 가장 좋은 가구를 가장 매력적인 조건에 소비자들에게 소개할지 고민했다. 또 군산의 경기흐름과 소비자 트렌드를 면밀히 분석했다. 그 결과 그녀가 선택한 것은 ‘박리다매’. 날이 갈수록 불황이 심했던 군산의 경기 여건을 감안해 가격을 중저가로 정하고 최고의 품질을 지닌 제품들로 구성, 시민들에게 전국에서 가장 싸고 좋은 물건을 소개한다는 자부심하나로 판매에 매진했다. 채 1년도 되지 않아 전국에 ‘김선옥’이라는 이름을 알렸고, 전국 각지 가구점 대표들이 그녀의 판매기술을 눈으로 보고 배우고자 ‘삼익가구’로 견학 오는 일까지 발생했다. 점차 새만금 개발사업이 탄력을 밭아 2006년부터 경기가 호전되자 김 대표는 중저가에서 중고가로 전환, 디자이너의 가구까지 선보이며 시민들의 소비욕구를 충족하기에 이르렀다. 2006년부터는 아이파크를 비롯해 한라비발디, 코아루, 오투그란테 등 네임 밸류를 지닌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소비자들의 욕구가 한 단계 상승했다. 이러한 변화 심리를 미리 예견했던 김 대표의 판매 전략은 적중했고 전국 톱3 안에 올랐다. 김 대표는 “여자가 가구점을 운영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본사에 선지급과 대량입고로 싼 가격에 물건을 구입해 저렴하게 판매하는 착한 경영방식을 고수했다. 직원들을 친인척으로 구성해 배달이나 A/S의 만족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또한 소비자들이 카달로그나 인터넷 홈페이지 상에서는 미처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인터넷 쇼핑을 망설이고, 인터넷 몰에 의해 가격이 모두 공개된다는 점을 간파했다. 이에 모던, 클래식, 빈티지, 원목 등 다양한 스타일과 디자인의 가구들을 대형 매장에 전시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직접 만져보고 세세히 확인하도록 배려했다. ‘견물생심’…결국 소비자들은 같은 가구를 인터넷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과 늘 성실한 김 대표의 태도에 신뢰감을 갖게 됐다. 삼익가구에 방문한 소비자들은 세 번 놀란다. 첫째 넓은 매장과 다양하게 비치된 가구에 놀라고, 둘째 옷차림만 보고도 소비자의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김 대표의 눈썰미와 통찰력에 놀라고, 셋째 인터넷보다 저렴한 가격에 놀란다. 이런 탓에 한 번 방문한 소비자들은 단골이 될 수 밖에. 김 대표는 “가구는 최소 10년 이상 사용하는 크기가 큰 제품이어서 소비자에게 흡족한 제품을 권하지 않으면 원망을 사기 십상”이라며 “충분히 구경하고 고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하루 방문객만도 200명. 이들을 일일이 안내하며 설명하다 보면 목에 무리가 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피곤한 줄 모른다. 다른 판매직원들이 있음에도 굳이 김 대표를 찾는 고객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최근 40~50대는 물론이고 20~30대의 창업이 늘고 있다. 철두철미한 경영원칙을 세우지 않고 덜컥 창업을 하면 백중백발 실패하기 마련”이라며 “창업에 앞서 관심분야에서 최소 3년 이상 직원으로 일해 본 뒤 개업하고, 각 분야 최고 성공인을 찾아 반드시 상담할 것”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김 대표는 “간혹 서울이나 타지역에서 물품을 구매하는 시민들이 있다. 그런 분들을 뵐 때마다 안타깝다”면서 “시민들이 지역 산품과 상점을 애용할 때 경기가 회복되고 이것이 가정경제에도 좋은 영향을 미쳐 군산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가구점 활성화를 위해 가구점이 집결된 장미동 일대를 가구거리로 특화해 소비자들의 발길을 유도할 필요성이 있다”며 “ ”상인들 역시 상점마다 지닌 특수성과 개성을 살린 가구와 서비스로 시민들의 만족도를 높여 모두가 잘 되는 군산이 되길 바란다“며 군산에 대한 무한 사랑을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