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금강에 살어리랏다 - (36) 나포면 주곡리 신촌마을 한 겨울인데도 잠시 비가 내린 후 개인 오후. 햇살을 받으며 계곡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자리한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 앞 버스 승강장 지붕 위에 달린 마을 방송용 확성기가 두 방향으로 각각 하나씩 놓여 있는 이곳이 나포면에서 적은 마을에 속하는 주곡리 신촌마을 이다. 마을이름이 신촌(新村)이어서 새로 이름붙여진 마을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1960년대 말경에는 이웃마을들과 모두 주곡리 1구, 2구, 3구 등으로 불려 한동네였고 농촌 근대화 운동으로 유명한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이웃 외곡마을과 둔기마을 그리고 신촌마을로 나뉘어 불리기 시작했단다. 신촌마을 이기홍 이장(45)은“오래된 마을이지만 신촌이라 부르니 외지 사람들은 마치 새로 조성된 마을같은 느낌을 받는다”며 마을의 어제와 오늘을 대비해 설명해준다. 예전 같으면 지금쯤 지붕을 엮느라 집집마다 품앗이로 돌아가며 분주할텐데 한적한 분위기에서 오히려 시내 등지로 일다니기 일쑤여서 강변 농촌마을의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한다. 예전 같으면 지금쯤 지푸라기로 지붕을 엮어 용마람을 만들며 품앗이로 한창 지붕을 엮을 때인데 새마을 운동이후 농촌 현대화로 모든 초가집들이 사라졌고 이제는 초현대식 전원주택들이 들어선다. “지푸라기도 예전에는 귀하게 쓰였지만 요즈음 소사료용으로 이용될 정도이고, 지푸라기를 훑던 홀대도 조금 나아지면서 호롱기로 변했고 좀더 발전한 것이 시쿠덩거리며 살려 쓴 발동기였고 자동탈곡기를 거쳐 현재의 콤바인으로 변해 세월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고 이 이장은 말한다. 20여년을 훨씬 넘긴 마을안 대나무들도 예전엔 동치미 담그며 많이들 꺾어가곤 했는데 이제는 김장담그는 집조차 찾아보기 힘들어 대나무들이 무성하고 죽순을 찾는 발길이 더러 있다 한다. 집 뒤편 망해산의 잔 나뭇가지들과 마른 나뭇잎들은 땔감으로 남아나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보일러가 다 들어와 땔감이 필요 없는 터라 산에 올라가는 이들도 없어 수북히 쌓인 낙엽들이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 이곳에서 20여명에 이르는 친구들과 망해산과 금강을 놀이터 삼아 뛰어 놀았지만 요듬 아이들은 몇 안되는 데다 집에 들어앉아 컴퓨터 오락 등에 빠져 사는 모습이 큰 변화의 하나라는 이 이장은 시내버스가 처음 성산까지만 다녔을 때 3원이었고 망해산을 너머 임피중이나 대성중으로 다니던 시절 서포까지 닿았던 시내버스비는 9원이었는데 지금은 720원이니 강산이 두세번 바뀌는 사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고 덧붙인다. 수리시설 없이 강변마을에서 손모 심을 때 품앗이 삼아 날짜 맞춰 놓고 비오기만 기다리다 비는 오지 않고 일정이 틀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갑자기 비 내리면 짜맞춰 놓은 품앗이 일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 집으로 흩어져 모심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당시는 방죽 옆 논 값이 제일 비쌌지만 금강하구둑 건설 이후 반전되는 양상을 보였다. 도로가 뚫리고 시내버스를 비롯 자가용이 연락부절 하니 고향에서 살며 30분 거리의 시내를 오갈만도 한데, 농촌에서 농사 외에 할 것이 없어 소득이 적은 반면에 시내를 오가며 소비는 시내와 다를 바 없는 것이 오늘의 농촌 현실이기에 자연 떠나가기 일쑤라는 것. 젊은 사람들은 떠나 살으려 하지만 간혹 나이든 이들은 혹 빈집 없냐고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나이들어 복잡한 도심보다 공기 좋고 환경 깨끗한 금강변 마을들을 선택하는 이들의 발길이 점차 늘어날 징조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장 등 나포 주민들은 언젠가 다시 강변마을 사람들이 부러워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 믿고 고향의 맑은 공기와 산과 강을 아름답게 지키려 오늘도 애쓰고 있단다. 둔터, 쇠종골, 용호초리, 꿀꾸지 등 옛지명들을 들으며 신촌마을을 지나 둔기마을에 당도하니 입담 좋기로 소문난 동네란 말에 성급한 기대감이 앞선다. <김석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