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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출신 강구현 선생 독립유공자 지정돼야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0-12-31 00:00:00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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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출신 강구현 선생 독립유공자 지정돼야 목숨걸고 독립운동 거액 군자금 조달에 헌신 공적 부자승계 독립운동가로 숭고한 뜻 기려야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산하 신흥무관학교 학우단에 독립운동 군자금조달 중책을 맡았던 강구현(康九鉉 1917-1975) 선생의 공적을 재평가하고 독립유공자로 추서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 선생의 고향 군산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군산문화원 남정근 원장(70)에 따르면 1917년 3월19일 만주 봉천성 통화현 합니하에서 강기영(康璂映) 선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927년 해외 망명중 모친의 타계로 조국 고향인 당시 군산시 구암리 백부 강기승(康璂昇)씨 댁에서 거주하며 학업해 왔다. 강구현 선생은 독립운동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자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당시 어린 소년으로 만석궁의 거부였던 백부 강기묵(康璂默) 진사를 찾아가 독립운동자금을 도와 달라고 매일같이 4년여간 간청했다. 어린 조카의 독립운동을 위한 호소에 감복해 강기묵 진사는 당시 거금 20만원을 정착금으로 주었다. 강구현 선생은 이 20만원에다 백모로부터 받은 2백원을 보태 1932년(당시 16세)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현실을 통분하여 만주로 건너가 이미 해외망명 중이던 부친 강기영씨를 찾아가 독립군 신흥무관학교 학우단 재정조달 중책을 맡아 20만2백원을 신흥무관학교 학우단에 독립운동 군자금으로 헌납했다. 당시 20만2백원의 자금은 2000(庚辰)년도 대한민국 통계청 시가표준비율 액수에 의하면 33억1천2백77만6천3백84만원에 이르는 거금이다. 또 강구현 선생은 임시정부에도 5만원, 백범 김구선생에게도 2만원 등을 독립운동자금으로 헌납했다. 그리고 학우단 소개로 잡입활동의 편의와 군자금 마련을 위해 양곡상회 직원으로 일하며 10여년동안 받은 봉급 전액 30여만원이란 자금도 헌납했는데 이 금액은 2000년도 대한민국 통계청 시가표준비율액수에 의하면 49억6천4백19만3천79원이란 거금에 해당한다. 이처럼 도합 50만2백원(현 82억7천6백96만9천4백63원)이란 거금의 독립자금을 헌납했고 1940년 부친이 병환으로 서거후 조국독립을 끝까지 쟁취하라는 유언을 가슴깊이 삭이고 계속 독립투쟁을 하던 중 조국광복을 맞이했다. 귀국 후 외삼촌 배헌(裵憲) 제헌국회의원 보좌관을 역임하면서 정치에 헌신하던 강구현 선생은 1975년 8월15일 한많은 일생을 58세로 마감해 포천군 소흘면 송우리 재림공원 at지에 잠들어 있다. <김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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