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운동 거사계획시 부터 참여 춘고 이인식 선생은 1901년 임피면에서 태어나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말미를 고할 무렵 조국독립의 쟁취 뜻이 고조돼 학생대표, 민족대표급 인사들과의 연결임무를 맡는 등 3.1운동 거사계획 때부터 참여하였다. 1919년 3월1일 재경학생 대표들이 3.1독립운동의 실행면을 담당할 때 춘고(春皐) 선생은 독립운동 주최측과 외국공관과의 연결책임을 맡았으며, 독립선언문 낭독 후에는 시위 군중을 외국공간으로 유도하고 선봉이 되는 임무를 맡아 활약하다 현장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인식 선생은 당시 전국학생지도자 연희전문 김원벽·보성전문의 강기덕·경성의학전문학교의 한위건 등과 같이 보성중학교 대표로 학생투쟁 대열에 참여했다. 이인식 선생은 이후 10개월의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며 많은 애국지사들을 만났고 제2항일운동에 참여할 것을 결심해 1920년 출감후 일경의 감시를 피해 가산을 정리하고 만주를 거쳐 상해로 들어가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 8천원을 헌납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일본에서 항일운동을 계속하다 일경에 발각돼 조직이 일망타진될 무렵 다시 중국에 밀입국해 망명생활을 시작(1925년)한 이인식 선생은 동만주지역에서 항일운동을 펼쳤다. 1945년 귀국후 임피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10여년간 전념했으며, 1962년 3월1일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받았고 1963년 3월 서수면 서수리에서 숙환으로 별세(63세)했다. 이인식 선생의 영결식은 당시 전라북도 사회장(장례위원장 김인 도지사)으로 임피중학교 교정에서 치러졌다.<김석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