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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단상 - 82년전 군산3·5 독립운동의 아침에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1-03-03 00:00:00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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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창 렬 3.1독립운동은 세계사적 의의지녀 군산은 유관순 아우네장터보다 28일 빨라 “우리는 여기에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하는 국민임을 선언하노라. 이것으로써 자손 만대에 일러 겨레가 스스로 존재하는 마땅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고 외치던 3·1독립운동이 있은지 어언 82년이 되었다. 3·1운동은 대한민국 건국 후 몇 차례의 혁명과 수 없는 헌법개정에도 불구하고 헌법전문 첫 문장이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로 시작할 정도로 건국정신이 되고 있다. 3·1독립운동은 민족사적 가치가 대단하다.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최초의 근대사적 의미 즉 민족의 자주독립, 자유와 정의와 평등을 바탕으로 한 민족운동이었으며 사상과 종교, 직업, 세대 간격을 초월한 전 민족이 일치해서 총궐기한 운동이었던 점에서 의미가 크다. 3·1운동은 민족사에 한정하지 않고 세계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중국의 현대 사회에서 전환점이 된 1919년 5·4운동의 밀알 계기를 마련했었고, 필리핀의 1919년 여름 독립시위 운동, 민족의 비폭력 저항운동 등에 영향을 끼쳤다. 3·1운동이 있은지 10주년이 되는 1929년 간디의 스승 타고르는 한국을 이렇게 격찬했다. “일찌기 아시아 황금시대의 등불의 하나였던 조선인, 그 등불을 다시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빛이 되리라. 무한히 퍼져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전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조선이여 깨어나소서” 이러한 역사적 의미가 큰 82주년 3·1운동은 호남 최초로 1919년 3월 5일 이 호남땅 구암동산에서 우리의 믿음의 선열들이 나라와 민족을 구원코저 빛을 발하여 일어난 거룩한 의거였다. 구암교회 교회교인이면서 영명학교 멜블딘여학교 선생들과 학생들. 그리고 구암예수병원 직원들의 의거는 유관순열사가 주도하여 일어난 천안 아우네장터 의거보다도 28일이나 빨랐고 구암산에서 출발한 100여명의 만세대열이 장터를 거쳐 경찰서 앞까지 행진했을 때는 800여명의 의민대열이었다. 체포되지 않은 선생과 학생,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앞다퉈 선봉장이 되었다. 지금 기독교 선교 1세기를 매듭짓고 선교 2세기를 달리면서 과거 1백년 동안의 기독교가 민족의 시대사적 여망과 깊은 연대성을 가지고 선교의 장을 펼쳤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조국에 민족의 양심과 희망과 꿈을 주어야겠다. 지금도 바다건너 일본은 국수우익 단체들에 의해 역사가 왜곡되고 진실을 오도하는 섬나라의 근성을 세계와 역사 앞에 치부를 드러내며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그들의 경제침략과 재침략의 야욕을 기회만 있으면 구체화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므로 우리도 선열들의 구국지존자립정신으로 튼튼하게 무장하여 보다 좋은 새 세계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도록 오늘에 다시 한 번 다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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