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신문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메인 메뉴


콘텐츠

정치

■3월의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 선생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1-03-03 00:00:00 링크 인쇄 공유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남강 이승훈(南岡 李昇薰·1864.3.25 - 1930.5.9) 선생은 평북 정주에서 가난한 서민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향리 서당의 3, 4학년 한학을 배운 것이 학문의 전부이었으나 근면 성실한 성품을 바탕으로 상업계에 뛰어들어 입신한 인물로 독립운동의 거목이었다. 처음 유가상점 사환으로 시작해 보부상을 거쳐 유기공장 설립 등 민족기업가로 성장한 선생은 무역과 운송업도 벌여 부호가 되었으나 1902년 일본 영사관 소유 선박과 선생의 엽전 운반선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연이은 사업실패는 반일 민족의식과 함께 민족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1907년 귀국한 도산 안창호 선생과의 만남은 일대 전기가 되어 시민회에 참여하며 국권회복을 위한 구국계몽운동에 본격 동참했다. 왕성한 구국운동에 일제의 요주의 인물이 되어 1911년 안악사건이 발생하자 남강 선생은 제주도에 유배됐고, 테라우치총독 암살 음모 주모자로 지목돼 징역 6년에 처해졌다. 출옥 후 선생의 독립정신은 더욱 강해져 오산학교를 중심으로 민족교육운동을 계속해 기독교계의 3.1운동을 주도했고 서울에 올라와 최린을 매개로 천도교와 연합을 이루어 3.1운동의 일원화, 대중화, 비폭력화 원칙을 수립하고 나아가 기독교계 민족대표의 선정에 이르렀다. 3.1독립선언 직후 일제 경무총감독에 잡혀가서도 독립의지는 변치 않아 민족대표 가운데 가장 늦게 출옥했다. 이후 민립대학 설립과 물산장려운동 그리고 동아일보 사장을 역임했다. 선생은 1930년 5월9일 “내 뼈는 표본으로 만들어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보여주기를 원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67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 군산신문사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카피라이터

LOGIN
ID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