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관광상품 정착 위한 한 길 애향심 바탕 숱한 고비 넘겨 쌓아온 십개성상 지역 관광상품이 방치돼 있음을 아쉬워하며 군산신문 창간과 더불어 시작된 군산∼전주간 백리길 벚꽃아가씨선발대회가 올해로 열번째를 맞이해 그 화사한 멋을 한층 더하고 있다. 차가운 겨울의 혹독함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약동하는 새 봄의 신기운을 가득 담아 또 한 해를 열심히 활기차게 생활하자는 다짐을 펼쳐 보이며 지나온 벚꽃아가씨서발대회는 여타 미인대회와는 나름의 차별성을 갖고 발전을 거듭해 왔다. 무엇보다 시민과 군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함께 참여하며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벚꽃아가씨선발대회를 위하여, 여타 실내 선발대회 행사가 문화회관과 같은 규모에서 열리는 것과 달리, 한결같이 군산월명실내체육관 특설무대에서 지속 펼쳐온 것이 특징중의 하나이다. 첫 대회가 열리던 1992년 4월11일, 새벽까지 봄비가 오락가락하더니 대회 탄생을 축하하듯 화창한 봄날이 열렸고 호기심을 잔뜩 머금은 관중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입장해 1만여명 가까이 첫 선을 보인 벚꽃아가씨선발대회를 응시했다. 대회는 성황리에 치러졌다. 준비기간이 1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군산신문 창간 기념행사로 전국규모의 벚꽃아가씨선발대회를 개최한다는 사실 자체가 비슷한 대회를 치러본 다른 기관이나 단체들의 불가능 판단을 자아냈었다. 그러나 군산신문사 전 직원은 창간을 기념해 지역의 문화예술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밤낮없는 대회준비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했고 대회는 성황리에 치러졌다. 첫 대회임을 감안해 당시 참가신청자 가운데 무려 41명을 본선무대에 올렸고 봄의 활기와 젊음이 어우러진 활력의 무대는 군산의 새 봄 벚꽃축제의 하이라이트로 자리하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당시 벚꽃은 무조건 일본 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열심히 대회를 준비해온 군산신문사는 그토록 많았던 월명공원의 벚꽃이 반일감정으로 잘려나가 관광상품을 잃어버린데 대한 아쉬움을 표출했으며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도”라고 사회자에게 밝힌 1회대회 참가번호 1번 정미경양(당시 군산전문대 유아교욱과 1년)의 인터뷰는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월명공원 벚나무들을 무참히 자르던 일이 중단됐고 월명공원을 비롯한 곳곳에는 벚꽃을 다시 심는 계기가 된 것이다. 92년 당시 군산공설운동장 일대에는 수년전부터 밤 벚꽃놀이 난장이 자연스럽게 열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지만 이들에게 보여줄 그 어떤 문화예술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신선하게 다가선 벚꽃아가씨선발대회는 군산의 봄 벚꽃문화예술제 탄생을 이끄는 군산-전주간 100리길 벚꽃축제의 하이라이트로 부각됐다. 92년 제1회 대회가 성공하는데는 지역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역 문화예술단체들의 무대 구성 그리고 민·군 친목도모에 적극 나선 35향토사단 군악대와 지프차량의 도움이 컸다. 대회 당일 오후 1시부터 군산지역 도심을 관통하는 시가지 카퍼레이드가 화려하게 펼쳐져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대회 홍보에도 큰 몫을 차지했다. 지역 예술단체들은 식전 공개행사를 통해 농악, 에어로빅, 태권도시범, 댄스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펼쳤고 매년 1만여 관중이 운집한 벚꽃아가씨선발대회 무대는 일약 지역 예술인들의 주요 활동 영역으로 자리잡혔다. 이렇게 제1회 벚꽃아가씨선발대회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리자 2회대회 부터는 전년도의 성공에 따른 후광으로 많은 부분의 준비들에서 발전을 이루었고 지역 협찬사들과 참가자들의 참여도 활발해졌다. 해마다 새 봄이 열리고 첫 번째 맞이하는 선발대회로 자리한 벚꽃아가씨선발대회는 무엇보다 투명한 심사를 바탕으로 참가자, 관객, 주최측 모두가 한가족이란 인식 속에서 대회를 만들어간다는데 성공의 또 다른 열쇠가 있다. 군산신문사가 주최한 벚꽃아가씨선발대회는 협찬사들이 제품홍보차 내놓은 각종 경품들을 입상한 미스벚꽃들의 추첨을 통해 현장에서 관중에게 전달토록 함으로써 지역기업과 시민·관광객들이 교감하는 자리를 만들었고, 본선대회 틈틈이 항구도시 군산, 신 산업지대 희망의 땅 군산을 알리는 첨병 역할도 빠트리지 않았다. 또 대회를 통해 선발된 입상자들의 정기적인 모임을 유도해 사회봉사활동과 문화현장탐방, 국내외 시찰 등을 펼치는 나름의 전통을 쌓아갔다. 대회가 끝나고 나면 그만인 많은 대회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체계를 시도했으며, 비록 입상을 하진 않았어도 본선대회에 오른 참가자 모두를 대상으로 취업 등 각종 상담과 유대관계를 지속함으로써 벚꽃아가씨선발대회가 가족적 분위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약속을 실현해왔다. 벚꽃아가씨선발대회가 역사를 쌓아가며 더욱 활기를 띠던 지난 97년에는 마침내 군산시와 군산예총이 제1회 벚꽃문화예술제를 시작함으로써 군산의 봄 벚꽃축제를 관광상품화 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각종 공연과 백일장대회, 사생대회 등이 벚꽃과 어우러지며 볼거리를 더욱 늘려나갔고 봄의 활기를 품격있게 찾으려는 군산시민들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97년 말 불어닥친 IMF체제의 한국경제 위기는 발전 일로를 걷던 벚꽃아가씨선발대회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쳐 군산신문사로서는 지난 98년 7회대회 개최여부를 심사숙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어려운 시기에 용기를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담아 봄의 활력을 전해온 벚꽃아가씨선발대회가 계속돼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이 때문에 대회규모를 평년수준으로 낮춰 치른 98년 IMF 상황하에서의 벚꽃아가씨선발대회는 따뜻함으로 가득했다. 특히 전국 각지에서 출연한 대회 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힘네세요!」「아빠! 사랑해요」를 인터뷰 때마다 구호처럼 외쳤으며, 겨울을 극복하고 화사한 봄꽃을 피운 벚꽃처럼 경제난을 반드시 이겨내고 더욱 튼튼한 살림살이를 만들자는 의지를 드높이는데 앞장섰다. 지난 99년의 제8회 벚꽃아가씨선발대회는 5월1일 군산개항 100년을 목전에 두고 펼쳐짐으로서 각 지역 참가자들이 군산개항 100년을 축하해 주었고, 군산이 유서 깊은 역사의 도시임을 만방에 알리는 대회로 치러졌다. 특히 제8회 대회 입상자들은 군산시가 마련한 개항100주년 행사에 초청돼 퍼레이드를 벌이며 많은 시민들의 환호를 받아 벚꽃아가씨선발대회가 지역의 대표적 문화예술행사로 자리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새 천년 첫 미스벚꽃들을 선발하는 제9회 벚꽃아가씨선발대회가 새 희망을 품고 막을 올리며 무대가 한층 성숙함을 담았음이 역력했다. 국악에서 힙합 등에 이르기까지 지역 청소년들의 다양한 공연을 곁들인 2000년 벚꽃아가씨선발대회는 조화와 희망, 환희와 꿈을 관중들에게 선사하며 도약하는 군산의 의지를 종합적으로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2001년 뉴 밀레니엄시대에 제10회 벚꽃아가씨선발대회가 오는 14일 다시 그 열정과 젊음, 봄의 새 기운이 가득한 군산월명체육관 특설무대에 펼쳐진다. 올해의 주제는 다시 되돌아보는 군산, 일어서는 군산을 주제로 애향 을 이야기하며 지난해 10월26일 기공식을 가진 군산자유무역지역 유치를 기념한다. 올해는 열번째 대회를 맞이해 다양한 볼거리를 시도하고 영상과 무대공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항구도시 군산에 묻혀있는 자긍심들에 새 생명력을 불어넣을 예정이다. 더불어 군산-전주간 벚꽃터널의 하이라이트였던 군산의 벚나무들이 화사했던 모습과 시민·관광객 등이 한데 어울려 시끌벅적한 축제를 통해 활기찬 군산임을 알리던 전형적 벚꽃 봄 축제가 되살아나기를 기대하는 메시지도 담는다. 10년 연속 끊임없이 이어온 인기연예인과 함께 하는 시민위안공연과 관중에게 돌아가는 푸짐한 경품추첨도 계속된다. 군산에서 펼쳐지는 벚꽃아가씨선발대회는 자연의 선물인 봄 벚꽃이 화사한 시기에 자연과 환경을 사랑하는 순수인들의 인간사랑 참 정신을 넓히려는 역동의 무대로 또 다른 10년, 100년을 향해 끊임없이 이어나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