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많은 이로움만 던져두고… 굳굳한 신념 철학으로 조국,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 군산 향토기업의 거목이었고, 인생의 후반에는 사학의 큰 배움터를 일구며 한 시대를 풍미한 인당(仁堂) 강정준(姜正俊) 호원대학교 이사장이 세상을 떠났다. 기업을 일구며 많은 사람들에게 생업의 터전을 만들어 준데 이어 배우고 연구할 수 있는 큰 상아탑을 일구어 놓는 등 세상에 많은 이로움만을 남기고 떠나간 인당의 덕이 후대에 길이 전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당 강정준 이사장은 1915년 6월 김제 금산면 쌍용리에서 출생했다. 조부인 강인지(姜仁智)는 호조참판을 역임했고 넉넉한 가세의 지주로 농업을 경영한 부친 강덕찬(姜德贊)씨·평산 신씨와의 사이에 3남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강 이사장은 유복한 가정에서 유교적 훈학을 받으며 자랐고 10세 때인 1925년 김제중앙보통학교에 입학했다. 더 넓은 학문의 세계로 나아가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학문을 배우려는 강렬한 청운의 꿈을 안고 1931년 현해탄을 건너 일본 동경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식품도매점에 취직해 주경야독하던 인당은 3년만에 일본 명문 와세다대학 상과에 등록해 예과 2년을 수료했고 이 때부터 기업인의 꿈을 키워갔다. 1940년 25세의 청년 인당은 귀국하여 일제 식민주의의 거점으로 호남에서 가장 번창했던 군산에 사업가로 첫발을 내딛었다. 당시 일인이 경영하던 조선양조에 근무하며 최고의 업무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일본인 공장장의 다음가는 부책임자로 신임을 받았다. 1945년 민족 해방의 기쁨과 함께 인당은 청년사업가로 우뚝 섰다. 그해 9월 미군정의 포고에 의해 불하받은 조선양조를 동향인 몇 명과 함께 주식회사 백화양조로 설립했고 30세의 인당이 대표이사로 취임하였다. 이후 40여년동안 오로지 양조제조업에 뜻을 두고 ‘술 하나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집념’과 ‘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는 경영철학을 앞세워 백화양조를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이뤄냈다. 기업을 하면서도 낙후된 국가와 지역사회 선도를 위해 사회활동과 정치활동 등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군산시부의장(55년)과 국민운동 전북위원회 부의장(63년), 통일주최국민회의 운영위 의장(72년)에 피선되었고 67년부터 3대에 걸쳐 군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다. 이밖에 전북은행이사(68년), 전경련 이사(80), 군산라이온스클럽 회장(72년), 국제라이온스 지역부총재(76년) 등을 맡았다. 왕성한 기업과 사회활동 못지 않게 인당은 육영사업에서도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1978년 정은학원을 모태로 설립한 군산공업전문학교가 서해공업전문대와 군산개방대학, 전북산업대학교를 거쳐 현재의 호원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급속 발전한 것도 인당의 숭고한 뜻과 정직하고 청렴한 경영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종교인으로서 인당의 모습은 경건한 생활의 신앙인으로 진정한 사표가 되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교회를 위해 봉사했며 노구와 병고로 불편함에 시달리면서도 아침 6시와 저녁 8시 예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이렇듯 인당 강정준 이사장은 식민시대와 민족동란 그리고 전후 복구와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겪으며 굳굳한 신조와 철학으로 조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교육 등의 발전을 위하여 한평생을 다 바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