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포면 서포리의 신성삼거리를 보유하고 있는 신성(新城)마을은 안쪽에 터를 잡았다는 뜻을 내포한 마을이름으로 새로 터를 잡아 생긴 마을임을 의미한다. 신성삼거리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마주하는 신성마을의 이웃 신기(新基)마을도 마찬가지로 나포면의 다른 마을에 비해 비교적 새로 생겨난 마을임을 이름에서 알 수 있다. 기(基)와 관련된 마을들은 주로 새롭게 자리를 잡은 새 터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새 신(新)자와 터 기(基)자를 이어 표기하였다. 군산지역에만도 이처럼 새로 만들어진 터란 같은 유래를 지니고 있는 마을들이 많다. 옥구읍 수산리 신기와 옥산면 쌍봉리 신기, 임피면 영창리 신기, 화현면 금광리와 서수면 화등리의 신기촌, 대야면 복교리와 나포면 주곡리의 신촌 등 똑같은 예가 허다하다. 새롭게 만들어진 터전과 무슨 연관이 있을지 모르지만 30여가구가 모여있는 신성삼거리 주변 마을입구에는 철강회사와 건설회사가 함께 자리해 있다. 이들 회사의 주변은 존재를 알리려는 듯 비교적 어지럽게 널려 있어 무언가 정리가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전해준다. 마을주민들도 많은 사람이 오가는 도로주변이므로 깔끔하게 정리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이었다. 신기마을 주민들은 주로 신성삼가리 부근에 모여 살지만 대여섯 가구는 안쪽 감나무골이라 부르는 장갑산 아래에 살기도 한다. 감나무골이라 하여 유난히 감이 많이 나는 곳인가 싶었더니 그렇지는 않다고 신기마을 이장 김영복씨(49)는 말했다. 어린 시절 40여년전 현재의 도로 앞이 금강의 갯벌이어서 김 이장은 그곳이 또래들의 놀이터였다고 한다. 그 갯벌에서 게도 잡고 조개나 맛살 등을 잡고 놀았으나 얼마안돼 갯벌이 논으로 바뀌며 좋은 놀이터를 잃었다고 설명했다. 예전만 하더라도 가구 수는 지금보다 서너가구 더 있었지만 주민 수는 지금의 배인 2백50여명에 달했는데 세월의 변화를 따라가느라 많이들 도시로 나간 것이 가장 큰 변화라는 것. 김 이장도 15살 무렵 돈을 벌기 위해 서을로 올라가 20여년 양화점 일을 하며 살아보았으나 고향이 그리워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돌아와 보니 객지 생활보다 공기 좋고 인심 좋은 삶의 터전 신기마을이 더 없는 보금자리임을 느꼈단다. 마을 앞에 도로가 깔리고 차들이 빈번하게 오가더니 5년여 전부터는 인근에 석산개발을 하면서 덤프트럭 등이 많아졌다. 그런데 다행히도 금강호 제방 밑으로 새 도로가 뚫리면서 대부분의 차량들이 그곳을 이용했고 마을은 예전같지 않지만 상당한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이 지난해는 거제도와 부곡에서, 올 봄에는 설악산에서 단합모임을 가졌다는 신기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한가족처럼 산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금강하구둑이 생겼고 도심과도 그다지 멀지 않은데다 농촌도 도시나 다름없어 졌다는 김 이장은 신기마을이 예전부터 들판논 보다 고라실논이 더 옥토여서 풍요롭고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김석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