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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독립운동가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1-05-05 00:00:00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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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한 선생은 집안이 가나하여 어려서부터 담살이, 즉 머슴살이를 20여년 동안 하였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강직한 성품을 지녔다. 특히 농민의 아들로 러일전쟁 이후 곡창지대인 전라도 지방에 침투하여 토지약탈을 일삼는 일본세력에 분노하였다. 더구나 을사조약, 광무황제의 강제퇴위, 정미7조약과 그에 따른 군대해산 등 계속적인 침략을 감행하며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혈안이던 일제에 대항하는 의병운동에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머슴의 신분으로 의병부대를 조직하기 어려워 우선 관동지방에서 순천으로 옮겨와 활동하던 강용언 의병부대에 투신하여 부장이 되었다. 나아가 강용언 의병장이 양민의 재물을 탈취하는 등 민폐를 끼치자 그를 제거하고 의병부대를 장악했다.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1908년 4월부터 안담살이 의병부대를 이끌게 되자 우선 시장을 돌며 의병을 모집하고 전략전술이 뛰어난 해산군인들을 받아들였다. 이후 보성, 순천을 중심으로 의병투쟁을 강화하였다. 선생의 의병활동은 반일투쟁은 물론 반봉건적 투쟁 속 일본세력을 몰아내는데 주력했다. 예컨데 1908년부터 1909년 10월까지 26차례나 일본 수비대·헌병대·토벌대·순사대 등과 교전하고 침략 첨병노릇을 한 일본인 농어민들을 공격하였다. 또 일제 침략의 주구노릇을 하던 친일세력, 그 중에서도 일진회원들을 제거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러던중 1909년 10월 전남의병을 대상으로 한 일제의 이른바 남한폭도(의병)대토벌작전이 감행돼 의병들이 투항하자 후일을 기약하며 의병부대를 해산했고, 그 직후인 9월25일 고향으로 돌아가던중 보성 법화촌에서 일경에 피체되어 광주감옥에 수감되었다가 대구감옥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선생은 1911년 5월5일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김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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