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오성산 끝자락 금강을 마주하는 곳을 따라 26가구 8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사는 나포면 서포리 내촌마을의 배밭에는 올해도 작년과 같이 배농사가 알차게 익어가고 있었다. 서포리 5개마을 중 신기와 신성마을은 삼거리를 경계로 떨어져있고 서왕과 내촌, 원서포마을은 금강을 따라가며 3개마을이 나란히 자리해 있다. 그 중 내촌마을은 가운데에 자리해 내촌(內村)이라 했을까? 한 때 서왕마을로 편입된 과거 수락동이란 곳이 외촌으로 불렸다 하니 이와도 연관이 있을성 싶다. 내촌마을은 박정희 대통령이 5.16혁명을 일으킬 무렵까지만 하더라도 곰멀이라고 불려졌다고 조이철 이장(62)은 말한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살았는데 어릴 때 곰멀이라고 부르며 살았던 이곳 내촌마을은 산아래 좋은 집터라 여겨 살아왔고 평생을 농사지으며 생활했지만 큰 불편 없이 지냈 왔다”고 마을 자랑이 대단했다. 농업들을 주로 하지만 지난 95년도 부터는 강현욱 현 국회의원이 당시 농림수산부 장관시절 배재배를 권장해 시작한 배나무가 내촌마을 주변에 7백여그루 가까이 재배하고 있다 한다. 나포 배 맛이 아주 일품이어서 소문나 지난해 배농사도 잘된는데 더 없어서 못 팔 정도였고 올해도 현재까지 작황은 아주 좋은 편이라고 조 이장은 설명했다. 그러다 고속도로가 지나며 마을 뒷산을 잘라놓은 곳(마을사람들은 이곳을 광염동이라고 불렀다)에도 밭들과 마을 당산 그리고 아름들이 나무들이 있었는데 다 없어져 아쉽다고 말하고 국가사업이라 결국 견뎌냈지만 내촌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서포리 사람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단오날 곰멀 당산에 올라 아름들이 고목나무에 그네를 달고 놀이를 즐기는 등 굉장했었다는 조 이장은 자연 속에서 놀던 일들이 모두 추억만으로 다가와 안타까울 뿐이라고 덧붙였다. 마을 주민들은 고속도로를 내면서 오성산의 한 맥을 끊었기에 마을에도 그간 더러 좋지 않은 일들이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도 떨쳐버리지 못한단다. 조 이장도 현재 살고 있는 집 바로 위로 고속도로 휴게소가 생기는 지라 집 지을 당시 부친이 지관 등의 의견을 들어 유일하게 집을 지을 수 있는 곳이라 해 그곳에 집 짓고 오늘날까지 이어왔건만 큰 철기둥이 뒷산으로 우뚝 서고 좋은 풍경을 다 헤쳐놓으니 집을 옮기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불편한 마음을 가졌다고 밝힌다. 더욱이 바위를 부수느라 발파를 하며 소음과 먼지 등에 시달릴 때면 오랜동안 자연과 어울려 살았던 때가 한없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발파가 심할 당시에는 비만 오면 먹던 물들이 흑탕물과 뒤섞여 마음을 아프게 했고 그 아른 기억은 잃어버린 자연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결코 회복되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 때마다 조 이장은 옛 마을 풍경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떠올려보곤 한다며 마을의 앞날을 걱정했다. <김석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