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산」은 금강에 살어리랏다를 연재하느라 이제 막 지나온 나포면 서포리가 그 끝에 해당되고 성산면 금강변과 접하고 있는 군산지역의 명산 가운데 하나이다. 그 시작은 군산시 내흥동 사옥(沙玉)이며 성산면 도암리 부근에 이르러 넓게 퍼지고 다섯 개의 봉우리가 높낮이만 달리할 뿐 가까이 모여 있다. 최정상은 오성산봉으로 해발 2백27m의 높이이다. 오성산은 나포면과 이웃해 있는 성산면 쪽으로 높게 솟은 반면 나포면 방향에서 낮게 깔린 듯한 모습인데 오성산 자락의 나포면 서포(西浦)는 고려시대 조종포(朝宗浦)라 했고 조선시대에는 서지포(西支浦)라 불리는 등 그 위치감이 예전부터 뚜렷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오성산이 임피현으로 속해 있었고, 신동국여지승람 산천록에도 오성산이라 표기돼 있어 오성산이 옛부터 알려진 명산이었음을 입증해준다. 이러한 역사적 명산을 깊이 인식해 오성산 일대를 보존하고 잘 가꾸어 지역발전에 중요한 몫으로 사용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흔히들 오성산 하면 최고봉 오성산봉만을 오성산으로 여기려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오성산이 훼손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크다. 오성산의 훼손실태는 다시 다루기로 하고 우선은 금강변에 접한 오성산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기로 하자. 오성산을 이어가는 봉우리들은 물론 그 줄기들이 금강을 마주 대하고 아주 가까이 자리해 많은 발길들이 쉴새 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강과 산 그리고 바다가 자연현상들과 조화를 이루는 오성산 일대의 시원함과 신비감 때문이다. 최고봉인 오성산봉 옆의 봉우리는 봉화산으로 봉수대와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어 옛 군사적 주요 요새 가운데 하나였음을 짐작하기 쉽다. 이곳에서 백제의 땅을 지키던 군사들이 중국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장렬히 전사했음직한 기록들이 차차 밝혀지며 오성산 일대 우국충절의 기상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하늘이 맑은 날 오성산에서 내려다 본 금강은 실로 장엄하기 이를 데 없다. 흐린 날 탁해 보이는 물빛은 사라지고 하늘색 보다 진한 색깔을 담고 흐르는 도도함이야말로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절로 흥분시키고 남음이 있다. 오성산 발아래 상류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지금까지 지나온 익산시 웅포와 군산시 나포면 원나포, 공주산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고 또 봐도 반가운 금강의 흐름을 따라 펼쳐진 산야들의 숱한 사연들이 다시 떠올라 한동안 눈을 지그시 감고 시원하고 부드러운 바람에 젖어들었다. 오성산에서 내려본 국내 3대강인 금강의 유구한 흐름을 감안할 때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초라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이곳에서도 선사시대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덴데 그 명맥을 이어가지 못하고 삶의 터전을 옮겨야만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금강과 오성산은 그러한 역사의 변화를 모조리 알고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 역사의 향기를 찾아 금강과 오성산을 오가며 금강에 사는 사람들의 새로운 모습들을 만나보고 싶다. <김석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