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은 좋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학창시절 적어도 상을 한 두 개 이상은 받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물론 저학년으로 나이가 어릴수록, 상의 권위가 높을수록 온 세상을 얻은 듯한 그 감격과 뿌듯함이 더한다. 누가 감히 싫어하랴. 이 것은 아마도 칭찬과 칭송을 현실에서 확실하게 물증화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철이다. 지난 8일 노벨의학상을 선두로 영광의 얼굴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노벨상은 100만 크로네(94만3천달러)란 상금액수 뿐만 아니라 100년이란 역사로 인해 그 권위에 있어서도 세계 최고의 상으로 꼽히고 있다. 노벨상의 대부분은 미국의 몫이었다. 미국을 포함,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전체의 75%이상을 휩쓸고 있다. 그래서 노벨상도 서구 나라들이 그들 질서만을 기준으로 삼는‘그네들만의 잔치’란 질시 어린 평이 나온다. 어쨌든 세계공영과 평화 및 과학발전을 공적으로 상을 준다는 것은 좋다. ▼그럼에도 자의든 타의든 노벨상을 거부한 사람들은 6명이나 된다. 이중 베트남 평화협상에 관한 공적으로 1973년 키신저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은 베트남의 레둑토는 모국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는 소문 속에 우리도 이 상을 받았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미완이란 점에서 레둑토는 참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어떤 상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면 어리석다. 세상의 모든 상은 크든 적든 나름대로의 가치와 틀 안에서 상을 줄뿐이다. 노벨상도 마찬가지다. 단지 가치의 비중을 어디에 두느냐가 더 큰 관건이다. 그렇게 따지면 이름없고 적은 상이라도 당사자 입장에 따라 노벨상보다도 더 아름답고 귀한 것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