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되어 즐거워하는 것보다 사람이 되어 슬퍼하는 것이 낫다.’소크라테스의 이 말은 흘러 듣기엔 그 의미가 너무나 심장하다. 어떠한 고난과 고통이 따르는 삶이라 할지라도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떠한 고난과 고통이 따르는 삶이라 할지라도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뜻을 단고 있다. 사람으로 태어났음이 얼마나 다행이며 축복받을 일인가를 강하게 느끼게 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다. 다라서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지구라는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부대끼면서 정을 주고받고 의지하면서 살아간다.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더러는 싸운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부족함을 메우면서 사는 게 인생사다. 마땅히 희로애락의 감정이 따른다. 이 중 외로움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짐스러운 감정이다. 외로움 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은 노인이다. 하지만 혼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외로움은 항상 고독을 수반한다. 노인이 단 것을 좋아하는 것은 단것에 젖어 있을 동안만이라도 외로움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외로움과 고독을 벗하며 혼자 사는 세대가 5년 전보다 35.4%나 늘었다는 통계청 발표다. 전통가족의 해체를 뜻하는 이러한 현상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 곁에 와 잇다. 미혼자녀의 독립, 사별이야 어절 수 없지만 이혼이나 별거는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이 필연적인 사회 현상이라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모두가 불행해도 나는 행복해야 한다’고 고집할 때 사람은 더욱 불행해 진다. 바라는 행복의 기대치 충족이 어렵기 때문이다. 혼자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행복해 보일지 모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그들도 어려움을 안고 산다. 외롭다고 자탄할 것도 못된다. 외로움은 소중한 감정이기도 하다. 사람을 성숙시킨다. 외로움으로 인한 마음의 빈터가 자신을 뒤돌아보게도 한다. 외로움 속에서 우리는 또 하나를 배우자. 남을 이해하며 베푸는 법을. 이해와 베풂은 삶의 궁극적 목표인 영혼 진화의 첩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