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면 성덕리 항동마을 금강변에 자리한 월포(月浦)에는 다섯 개의 달이 뜬다고 한다. 월포에 뜨는 달과 오성산 위에도 떠있는 달, 맑은 금강물 위에 드리워진 달, 그윽한 향기의 술잔 속에 떠있는 달 그리고 월포의 정취를 즐기며 마음을 가다듬는 선비의 마음속에 간직한 달이 바로 그것이라 한다. 황원택 전 성산면장은 월포에서나 맞은편 충남 서천군 망월정에서 풍류를 즐기던 옛 선비들이 남겨 놓은 이 다섯 개의 달이야기는 선비들이 달을 만나고 즐기며 술과 노래를 섞어 흥겨워했음을 짐작케 함이니 당시의 월포 절경은 천하제일경(天下第一景)이요, 그 날의 술 한잔은 천하제일주(天下第一酒)였으리라 짐작된다고 말했다. 항동마을은 성살이라 부르는 오성산 밑의 골과 달개가 한 마을 이루어 성덕제의 맑은 물을 이용해 물걱정 없이 미작을 주업으로 생활해오고 있다. 금강하구둑이 건설되기전만 하더라도 성산면내의 최오지에 속했던 곳이다. 그러나 금강하구둑이 건설되고 해안도로가 연결되면서 시정은 매우 좋아졌다. 하지만 옛 정취는 자취를 감추었고 월포의 다섯 개 달을 즐기는 옛 선비들의 풍류는 찾아볼 수 없는 적막한 곳이 되었다. 그나마 월포의 모습이라도 남아 있음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항동마을 북쪽에는 평강채씨(平康蔡氏)의 제실(祭室)인 感慕堂(감모당)이 자리해 있다. 지난 1958년 2월 건립돼 반세기 가까이 조선시대 무과에 급제하여 訓練判官(훈련판관)을 지낸 蔡景俊(채경준) 장군의 묘소를 보살피고 제를 올려온 곳이다. 채경준 장군은 인조2년(1624)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월포 인근을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면적과 규모는 알려진만큼 그리 크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채경준 장군은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세운 공으로 武原從功臣(무원종공신) 勳一等(훈일등)에 녹훈되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충절의 표상으로 전해진다. 항동마을 동쪽 오성산 아래에는 술해라 부르는 골짜기가 있다. 이 술해라는 명칭은 단기 4110년 丁酉(정유) 서기 1777년 洪述海(홍술해)가 아들 相範(상범)·相吉(상길)과 지방 여러 씨족들이 모여 모의하던 곳으로 지금도 주줏돌이 있는데, 공술해는 배신자에 의해 발각돼 죽음을 맞이했고, 거기에는 지금도 숱한 전설이 많이 전해진다. 홍술해는 모의가 성공하면 王臨洞(왕임동)에 궁궐을 세울 참이었다 한다. 이 터가 있는 곳은 석산개발로 파헤쳐졌으며, 지역의 명산이자 영산인 오성산이 마구 훼손됨에 당시부터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한다. 지금은 이곳이 해안도로로 접근이 매우 쉬우나 당시는 오지에 속한 곳이어서 숱한이야기들을 간직했으리란 짐작은 어렵지 않다. 금강과 더불어 흘러온 수 많은 역사의 터가 토석채취로 아예 자취를 감추는 곳들이 늘어가는 형상이니 더 늦지 않도록 모두가 나서 보존과 새로운 자원으로의 활용을 도모할 일이란 생각이 든다. <김석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