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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금강에 살어리랏다 - (61)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1-11-10 00:00:00 2001.11.10 00:00:00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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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면 일대의 오성산을 끼고 여러 마을들이 자리해 있으나 금강에 인접한 마을은 앞서 지나온 성덕마을과 항동마을 그리고 앞으로 지나칠 요동마을 3곳이다. 그러나 오성산 너머로 유서 깊은 마을들도 금강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음을 마을들의 지나온 발자취에서 빈번하게 느낄 수 있다. 성산면 여방리 수심(修心)마을도 그 중의 하나인데 이 마을 형성시기는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수심마을에는 나포면 서포리 수래마을에서 시작된 옥구도수터널 공사가 진행되는 곳으로 5백42m의 오성산 속 터널을 통해 금강물이 전달되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고 있는 곳이다. 본래 이름은 역사상 전설로 이어져 오는 오성산의 오성인이 애국충절을 지킨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守心洞으로 불렸다. 이 마을이름을 守(지킬 수) 대신 修(닦을 수)로 바꿔 정한 때는 일제강점기로 여겨지나 정학한 고증이 필요하다. 수심마을 입구에는 1940년에 축조한 수심제(修心堤)가 있다. 이곳은 오성산의 맑은 물이 담겨 깊으며 붕어, 잉어 등 담수어가 서식하고, 마을 위쪽으로는 1927년 정해경 스님이 창건했다는 일광사(日光寺)가 있다. 마을 동편으로는 4백60여년전 이 마을을 형성한 평산 조씨 침(平山 趙氏 琛)의 내외 묘가 자리해있다. 또 이곳에는 100여년전 신천 강씨(信川 康氏) 덕일(德一)씨기 대원군의 천도교 탄압과 동학난을 피해 옮겨 와 그 자손들이 많이 살게 되었다 한다. 수심마을에서 전해지는 전설 가운데 장구메 전설은 탐욕의 끝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일깨워 준다. 장구산이라 불리는 오성산 서포쪽 줄기에 있던 이 준령에는 고려시대 불교가 흥할 때 그릇된 일부 중들의 욕심으로 주민이 학대당하자 하루는 어느 노스님이 찾아와 『이 절이 더욱 번창하고 너희들이 부를 누릴려면 저 줄기(장구메)의 중간을 끊어 장구모양으로 만들라』고 말했고, 이 말을 따라 하니 오성산의 정기가 끊겨 그 절이 망했다는 것이다. 비록 전설이지만 장구봉 줄기는 꼭 장구모양이어서 마을 주민들은 그 노스님이야 말로 부처님의 참 제자증에 중생구제를 위해 다녀간 것으로 믿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품은 오성산 아래 수심마을로 금강물이 흘러간다.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며 농사를 지어야 했던 논들로 금강물이 산 속을 뚫고 인공적으로 전해져 농사일의 신기원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오성산 아래 터널을 타고 흘러온 금강물은 수심마을에서 이웃 동요마을 까지 제2터널(길이 3백92m)로 다시 흐른다. 금강과 오성산의 새로운 인연이 시작됐음이요, 상산들판을 비롯 예전에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곳까지 금강물이 닿아 대지를 적시기 시작하며 대 역사를 지켜보는 이들의 감탄사를 자아내고 있다. <김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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