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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금강에 살어리랏자 - (63)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1-11-24 00:00:00 2001.11.24 00:00:00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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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면 여방리 동요마을 입구 은행나무 아래서 만추를 느껴봄도 잠시, 지방도 706호선을 따라 오성산 입구에 이를 즈음 서해안고속도로 군산IC 앞을 지나며 잠시 멈춰 섰다. 그토록 염원하던 고속도로가 한마을 주민들의 오랜 교분을 갈라 이주케 하고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허술해 보임은 왜일까? 다른 지역 고속도로가 IC가 웅장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지방도 706호선과 연결된 IC진입로의 모습을 대하니 안타까움이 앞선다. 기왕 많은 희생을 치르며 만들어진 고속도로라면 보다 편리하고 발전적인 고속도로로 다가서기를 기대한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고속도로 연결도로 공사는 아직 멀었다 싶고 연결도로가 이어져야할 곳에는 잡초만이 가득하다. 좁은 고속도로 진입로를 돌아 들어가는 대형 차량들의 아슬아슬한 모습을 뒤로한 채 오성산 입구임을 알리는 이정표를 돌아 산 속으로 뻗은 임도(林道)로 들어섰다. 좌측으로 군장대학과 군산중앙고·군산중앙중 교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오성산의 충절과 영험한 정기를 이으려는 오성산지기를 자처하듯 중턱에 알맞게 자리해 있다. 임도 좌측 마을이 그 유명한 환동(環洞)이다. 오성산 임도진입로 입구에 위치한 이 마을은 옛 봉수대가 있었던 도진산(刀津山) 밑 그리 넓지 않은 계곡에 자리해 오성산을 등에 지고 앞으로는 마동이 위치해 있다. 마을주민 대부분이 개성 김씨(開城 金氏)들이 거주하며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농민선비로 알려진 김균석(金均錫)씨는 자녀교육과 농사 일의 선구적 노력을 펼쳐 느타리버섯, 양산딸기, 웃체, 산마 등의 재배법을 도입 보급하며 농사일지를 기록했다. 아들 영길(永吉)씨는 약사로 개업했고 손자 주헌(柱憲)씨는 인천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 유학자인 김판조(金判兆)씨도 선비로서 조상숭배의 정신과 효경심(孝敬心)을 깨우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아들 항석(恒錫)씨는 군산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또 한의사 김광일(金光日)씨의 아들 김기경(金基敬)씨는 군산에서 교사로 일하며 지역문학지 발간을 비롯 문인으로서 많은 공을 세우는 등 환동마을 출신들의 대를 이은 활약상들이 많다. 이곳을 고려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미 앞에서 오성산을 소개하며 이 고려터 이야기는 들어본지라 발길을 가파른 산길로 향했다. 중턱을 넘어 갈래 길에 이르러 망설인다. 오성산 정상으로 향하는 도 로와 성덕마을 방면으로 내려가는 임간도로 앞에서 정상에 오를까 하는 생각을 잠시 가져보았지만 길을 재촉하는 마음에 내리막을 택했다. 가을의 끝자락을 가득 담고 있는 맑은 하늘 빛 아래 오성산의 곳곳들이 모두 정겹기만 하다. 산 속의 도로를 따라 내려오니 둔덕리 상흥마을과 성덕리 성덕마을 사이 금강으로 향하는 도로가 나타났다. 금강에서 벗어나 오성산을 끼고 한바퀴 돌아 이제 다시 금강에 닿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김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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