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산에서 성덕리를 향해 내려와 지방도와 맞닿는 갈림길에서 금강을 향해 성덕리 방면으로 바로 내려가려 하니 반대편 둔덕리의 상흥(上興)마을에 마음이 쏠린다. 본래 「큰골」이라 부르며 사람이 살기 좋기로 이름난 곳이기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때문일 까? 본격 겨울임을 알리려는 듯 차가운 기운이 귓전을 에워싸지만 다소 강한 바람이 공기 속의 잡동사니들을 날려버렸음인지 상흥마을에 내리 비치는 초겨울의 햇살은 더 없이 따뜻하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오성산 옥녀봉아래 넓고 깊은 골에 자리한 상흥마을은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고, 원래 대동·흔옥마을 등과 합쳐 큰골이라 불렸으나 1921년 이 마들을 분리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황원택 전 성산면장은 상흥마을의 이름에서도 윗쪽에 있는 마을임을 직감할 수 있다며, 이 마을 최초 정착자인 유학자 남원 김홍기 선생이 터를 잡은 곳이란 의미에서 上興(윗쪽에서 흥한다)이라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은 연유로 상흥마을에는 남원 양씨들이 많이 살아온 곳이라 여겨진다. 현 강근호 시장의 고향이기도 한 상흥마을도 미작이 주업이지만 축산이나 원예를 부업으로 곁들이는 농가도 있다. 이 마을은 옛부터 오성산 옥녀봉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여성의 수명이 길었으며 善(선)을 행하는 자들이 많았다 한다. 흔히 어느 곳이든 옥녀봉의 전설에는 선녀가 등장한다. 이곳도 예외는 아니어서 옥녀봉에 선녀바위가 있는데 이 세상을 동경한 선녀들이 가끔 하늘에서 내려와 놀고 간 바위라 전해진다. 상흥마을과 대동마을 사이에는 서당골이 있다. 옛날에 서당이 자리했던 곳으로, 간혹 밭에서 서당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한다. 골짜기가 아담하고 풍치가 좋아 배움의 옛 터로 정해진 곳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곳에는 군장대학이 자리해 있다. 옛 선인들의 안목이 놀랍다. 지방도로변 상흥마을 입구에는 군산시청소년근로자 아파트가 자리해 있고 그 뒤편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우선 전원주택들이 눈에 들어온 다. 살기 좋은 터답게 집들도 깔끔하고 산뜻하다. 오래돼 낡은 명패가 마을회관이라고 쓰여있는 폐건물과 국기게양대 등이 마을의 유래인양 자리해 눈길을 끈다. 그 위로 전원주택과 텃밭에서 아늑함과 평온함이 느껴졌다. 오성산 주변 마을들이 점차 전원주택 단지로 변하고 있음을 알려주듯 상흥마을도 전원주택들이 대부분이어서 보기 좋은 모습이다. 맑은 햇살이 초겨울의 색채를 담은 오성산과 밝은 색 계통의 전원주택들을 더욱 조화롭게 비쳐주는 평화로운 상흥마을을 벗어나 지방도를 타고 금강변 성덕마을로 향했다. 오르막을 넘어 성덕가든이란 간판을 지나 내리막에 들어서 다시 발길을 멈춘다. 성산면 성덕리 일대와 한눈에 들어오는 금강이 아름답다. 하늘에 떠있는 적당한 구름과 맑은 하늘빛을 담은 강물 그리고 별장식 주택들을 품고 있는 산들이 한폭의 풍경화를 연출했다. <김석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