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링 우리 고대 소설을 보면 쌍가락지를 믿음과 약 속의 표물로 삼은 경우가 적지 않다. 두 개의 반지를 서로 합치니 하나가 되고 같은 글이나 문양이 있으면 남매나 형제, 또는 어릴적 부모들이 맺어준 약혼자였다는 애기들이 그것이다. 또 이산가족 상봉 때 많은 남쪽 가족들이 북쪽 가족들에게 쌍가락지를 주며 재 상봉을 기약했다. 이러니 쌍가락지는 기쁨과 만남을 기대하는 정표가 아닐 수 없다. 꿈에 쌍 금반지를 엄지손가락에 끼면 우두머리로 승진하는 등 대박이 터진다. 은반지는 우정이나 사랑이 오래간다. 하다못해 풀잎반지를 끼더라도 청순한 사랑이 결실을 맺는다고 해몽서에 적혀있다. 논개는 왜장을 끌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할 때 손마디가 쉽게 풀리지 않도록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가락지는 논개의 충절과 의기를 도와준 호국의 물건이다. 서구의 반지 역사는 동양보다 다채롭다. 4천500년 전 이집트에서 도장 모양의 갑충석을 손가락에 낀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장식을 겸해 도장으로 사용했다. 로마시대 반지는 신분을 나타냈다. 원로원 의원은 금, 귀족은 은, 평민은 구리, 노예들은 철로 만든 반지를 꼈다. 결혼반지가 등장한 것은 11세기 이후. 15세기 들어 프랑스에서는 약혼반지에‘사랑을 서약하고 몸으로 이를 실천한다’는 글을 썼다. 19세기 영국에서는‘신은 결합을 허락했다. 누구도 이것을 어길 수 없다’고 새겼다고 한다. 남 녀 모두‘임자 있는 몸’이라는 징표다. 최근 커플링이 초등학생들까지 번져 화재다. 남학생이 여학생을 사귀면서 반지를 함께 끼고 다닌다는 것이다. 헤어지면 또 다른 이성친구와 함께 다른 모양의 반지로 바꾼단다. 성인들의 커플 링 형태를 모방한 것이지만‘링데이’까지 설정돼 있어 더욱 성행한다. 일부 회사에서는 판촉물로 커플링 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도 감성이 풍부해질 때다. 집착하지 않고‘또래 관계’가 염려할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