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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금강에 살어리랏다 - (65)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1-12-08 00:00:00 2001.12.08 00:00:00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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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면 둔덕리에서 오르막을 지나 성덕리로 접어들며 내리막에 서면 아래로 금강과 성덕마을 그리고 성덕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머무르다 마을 입구에 이르러 왼편으로 저수지 주변에 새로 짓고있는 별장형 주택들이 시선을 끈다. 금강이 보이고 들과 산이 펼쳐진 조용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전원주택들이 혼잡한 도심과는 대조적인데다 오가는 이들에게는 이정표로도 손색이 없어 훗날 모두 완성된 모습들이 궁금해진다. 마을 앞 한 슈퍼에서 왼편으로 난 마을진입로로 들어서자 저만치 수백년은 됐음직한 큰 나무가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신 마냥 서있다. 진입로 왼편으로는 역사를 간직한 듯한 소나무가 한 줄로 늘어서 있는 풍경도 정겹기만 하다. 여기서도 전원주택들은 계속 새로 지어지고 있었다. 오성산을 배경으로 금강을 앞에 놓고 신축되는 주택들마다 별장이 따로 없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수십년전만 하더라도 골짜기 마을이어서 접근이 어렵기만 했던 성덕마을이 이제는 도로개설과 금강하구둑 건설로 인해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생활환경을 가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 胎鶴(태학)재 翰鳳山(한봉산)에 鳳頭(봉두)혈이 있다하여 삼성칠현(三聖七賢)의 명당이라 여겨온 터이기에 이들의 마을 사랑은 대단했다. 마을 안 세 갈래 길에서 좌우를 살피다 4백여년 묵은 팽나무를 지나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초겨울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마을 안 밭에는 대파가 가득하다. 더러는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는 모습도 보였지만 젊은이들의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었다. 모두가 도심으로 떠났거나 직장에 나갔기 때문일 것이란 짐작과 함께 이토록 살기 좋은 경치 등 생활환경이 뛰어난 곳에 안정된 분위기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앞다퉈 들어올 것이란 상상에 잠시 잠겨보기도 했다. 외발 손수레를 끌고 집으로 향하는 아주머니들의 걸음걸이가 다소 무겁게 보일 뿐 오성산이 봉우리만을 내민 듯한 성덕마을 안에는 마을 앞 전원마을의 풍경과 달리 예전 농촌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 친근감이 들었다. 점차 대나무가 곧게 서있는 마을 안으로 오르자 길은 겨우 소형차 한 대 지날 수 있는 폭으로 좁아졌다. 그래도 대나무를 따라 계속 오르니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 지고 네리막으로 향하자 대죽골방죽이 오성산자락 아래로 펼쳐지며 기막힌 풍경을 드러냈다. 저녁시간을 향해 가고 있는 시간대에 바람소리조차 숨을 죽인 산 속의 방죽에서 아예 머물고 싶은 유혹에 빠져들었다. 이 코스를 잘 가꾸면 더없이 좋은 산책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성산 주변의 마을들을 둘러보았지만 오성산 기상레이더 시설 맨 위와 오성산 정상의 편의점 지붕 등이 보이는 오성산 자락 바로 아래의 별천지 같은 방죽 주변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호기심이 발동한다. <김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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