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폴란드의 축구 경기가 있었던 다음날 오래 전부터 입장권을 샀다고 자랑하던 젊은 친구를 만났다. 전날의 흥분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표정의 그 친구,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지만 목이 쉬어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운동장에서 그 친구가 어떠했을 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만했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뛰면서 소리를 질렀으니 말이다. 이 애기를 연결시켜주는 고리에는‘붉은 악마’가 있다. ▼축구경기장에서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해 붉은 셔츠를 입고 머리띠를 두른 그들이 처음 나타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컴퓨터의 보급과 함께 소위 동호회라는 것이 만들어지면서 그들의 조직은 폭발적인 힘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붉은 악마는 조직이기 이전에 문화현상이다. 그들은 집에서 조용히 텔레비전을 통해 경기를 보고 응원을 하던 것에서 한 발짝 나아간 사람들이다. 단순한 구경꾼과 응원단이 아니라 운동장에서 함께 참여하면서 즐기고자 하는 구경꾼인 것이다. 이벤트화된 스포츠에 참여자로서 즐기고자 하는 집단의 출현, 그것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문화현상이다. 이러한 새로운 문화현상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성장의 산물이다. 축구장에 모여드는 그들을 누구도 강제한 적은 없다. 그들은 모두 자기 돈으로 옷을 사 입고 경기장에 들어온다. 제 돈으로 먹는 것을 해결하고 잠자리도 스스로가 마련한다. 그런 점에서 붉은 악마는 우리 사회가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하게 된 시대에 나타난 상징적인 문화현상이다. 그러나 성장의 결실이 가져온 것이면서도 그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현상이기도 하다. 먹고 살 만한 나라의 응원이 모두 붉은 악마만큼의 열정과 집단성으로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붉은 악마에게서 가장 놀라는 것은 무엇보다 그 엄청난 열정적인 에너지다. 그와 함께 욕망을 표현하는 그 우연성에 놀란다. 즐길 수 있는 이벤트가 존재할 때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솔직하고도 대담하게 드러내려고 한다. 축제가 끝나도 붉은 악마의 열정적인 응원은 우리들 가슴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즐기기 시작한 세대의, 그 욕망이라는 것에 대해 모두가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